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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김형욱 등 11명의 중령들, 현석호 국방부장관에 정군운동 건의
일자 : 1960.9.10
분류 : 경찰·군 개혁
요약설명 : 것이다. 한편 9월 12일 현석호국방부장관에게 올린 건의서에 서명했던 11명의 중령들은 하극상 혐의로 헌병대에 구금되어 조사를 받았다(한국혁명재판사편찬위원회 편, 『한국혁명재판사』 1, 한국혁명재판사편찬위원회, 1962, 917쪽). 쿠데타세력의 공식기록인 『한국혁명재판사』에는 이날 저녁의 회합에 박정희가 참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강준만은 공식기록이 박정희를 중심으로 기술하는 것으로 왜곡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오치성의 증언을 빌려 육사 8, 9기 들이 처음에는 박정희뿐 아니라 박병권·한신 등 다른 장군들도 자신들의 지도자로서 물망에 올렸음을 지적하였다. 오치성의 증언을 믿는다면 박정희가 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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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군사쿠데타 세력, 박정희 집에서 모여 쿠데타 조직문제 논의
일자 : 1960.11.9
분류 : 경찰·군 개혁
요약설명 : 폭동진압계획을 활용하여 이미 포섭된 30·33사단 및 해병대·제6군단 포병대 등을 동원하여 쿠데타를 일으키려 하였다. 한편 군사쿠데타 세력은 4월 19일로 쿠데타 일자를 확정함에 따라 본격적인 행동부대 조직에 착수하였다. 그 결과 광주의 최수종 준장과 청주의 김진위 준장 및 부산의 김용순 준장이 동조하였으며, 박임항 제1군 5군단장·채명신 5사단장·박춘식 12사단장이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밝혔다(한국혁명재판사편찬위원회 편, 『한국혁명재판사』 1, 한국혁명재판사편찬위원회, 1962, 918-919쪽). 그런데 오치성·김종필 등 일부 육사 8기는 이날 쿠데타 세력이 모임을 갖지 않았다고 증언하였다(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60년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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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쿠데타 세력, 4월 19일의 쿠데타 앞두고 각 부서 책임자 결정
일자 : 1961.4.7
분류 : 경찰·군 개혁
요약설명 : 갖고 4월 19일로 예정한 쿠데타 계획을 확인한 뒤 행동계획에 관한 논의를 가졌다. 이어 쿠데타 작전을 위한 각 부서 책임자를 결정하였다. 명단은 다음과 같다.최고책임자 : 박정희행정조달 및 박정희와의 연락 : 김종필행정 : 이석제행정연락 : 오치성작전 : 박원빈작전연락 : 강상욱4월 19일의 쿠데타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 쿠데타 세력의 예상과 달리 4월 19일은 평온하게 하루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박정희 군사쿠데타 세력은 5월 12일로 계획을 변경했지만, 그날도 공수단의 훈련으로 주력부대의 일부가 경기도 안성으로 출동함에 따라 다시 무산되었다. 그러나 박정희 세력은 계획을 철회하지 않았고 결국 군사쿠데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