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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진인(眞人)으로 우뚝 선 계훈제
요약설명 : 막 태동하려던 교원노조운동은 결실을 거두기도 전에 짓밟히고 말았다. 이 일로 수배령이 떨어진 계훈제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다. 이 기간에 그는 이화여대 회화과를 졸업한 재원인 김진주와 결혼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이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았다. 민주화운동의 동지인 함석헌조차 까맣게 모를 정도였다. 일경을 피해 암암리에 행동하던 독립군들의 삶과 그 원칙을 어렸을 때부터 익히 알던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일을 마치 독립군들의 생활 수칙에 준할 정도로 철저히 함구한 것이다. 그가 가까운 동지에게까지 결혼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은, 간악한 일제와 버금갈 만큼 비정하고 포악한 박정희 정권의 등장 때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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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청원백만인서명운동-들불처럼 번진 유신헌법반대운동
요약설명 : ‘개헌청원백만인서명운동’ 선언문이 발표되었다. ‘개헌청원운동 취지문’은 이 운동을 주도한 장준하가 낭독했다. “오늘의 모든 사태는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완전히 회복하는 문제로 귀착된다. 경제의 파탄, 민심의 혼란, 남북 긴장의 재현이란 상황 속에서 학원과 교회, 언론계와 가두에서 울부짖는 자유화의 요구 등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오늘의 헌법 하에서는 살 수가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오늘의 헌법은 그 개정의 발의권이 사실상 대통령에게만 속해 있는 것이다. 이에 우리 국민은 이와 같이 헌법 개정 발의권으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하고 우리들의 천부의 권리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대통령에게 현행 헌법의 개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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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 대통령’ 장준하 의문사
요약설명 : 사람인 이정빈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법의학교실)는 “장 선생의 사인은 추락이 아니라 가격에 의한 골절의 가능성이 크다.”며 누군가가 장준하를 “제3의 장소에서 살해한 뒤 시신을 옮겨 온 것”이라고 추론했다. 서슬 퍼런 유신독재의 한복판에서, 바로 그 유신헌법을 타파하기 위해 개헌청원백만인서명운동을 전개했던 장준하. 그는 ‘유신’이라는 말만 언급해도 감옥에 보낼 수 있는 긴급조치 1호에 의해 구속된 첫 번째 사람 중 하나였다. 1944년 일본군에 징집된 장준하는 6개월 만에 탈출해 6천리 대장정을 거쳐 중국 임천에 도착, 중국중앙군관학교 임천 분교 한국광복군 간부 훈련반에서 훈련을 받았다. 이듬해인 1945년 1월 중경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