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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_ 씨ᄋᆞᆯ의 소리 함석헌
요약설명 : 전 명동성당에서 있었던 ‘민주구국선언문’을 작성하고 서명하고 지지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유난히 눈에 띄는 한 분이 있었다. 하얀 수염에 흰 두루마기를 입은 훤칠한 이마의 노인. 바로 함석헌 선생이었다. “피고들은 3·1절 기념미사가 거행된 명동성당에서 민주회복이라는 명목 아래, 소위 ‘민주구국선언’을 발표하여 청중을 선동하여 시위를 촉발시킴으로써 민중 봉기를 확산하고, 나아가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이를 이용하여 현 정부를 전복, 정권을 탈취할 것을 획책하였다.” 판에 박힌 검사의 논고와 또한 판에 박힌 판사의 결심. 팔순을 바라보는 사상가이자 ‘겨레의 할아버지’ 함석헌은 다른 사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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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실천문인협의회 - 표현의 자유를 온 몸으로 외친 문인들
요약설명 : 명칭이 만장일치로 통과되는 순간이었다. 자실의 대표간사에는 스스로 고난을 자처한 시인 고은이 뽑혔고, 간사에는 신경림, 염무웅, 박태순, 황석영, 조해일이 뽑혔다. 선언문에 서명으로 동참할 문인들을 찾는 일은 의외로 쉬웠다. 문인들 대부분이 자신도 이 선언문에 참여하겠다고 자청했던 것이다. 서명자 수가 딱 100명이 되었을 때 박태순이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100명도 좋지만 101명이면 더 좋겠는데…….” 그때 전화로 서명에 가담한 사람이 작가 이문구였다. 이문구의 동참으로 선언문의 이름은 〈문학인 101인 선언〉이 되었다. 이 선언문을 시인 양성우가 밤새 등사원지에 철필로 글씨를 쓰고 등사기를 긁어 인쇄했다. 19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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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유언론실천선언 - 펜의 힘을 보여준 언론자유수호투쟁
요약설명 : 보내기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다. 이후, 원로 언론인 홍종인이 동아일보를 방문해 격려 광고를 실은 것을 계기로 전국의 수많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격려 광고가 봇물을 이루었다. “자유의 횃불을 밝히는 기름 한 방울의 성의를 표한다.”, “우리는 안다. 백지광고의 의미를” “동아, 너의 붓이 곡예를 하지 않는 한 우리는 너의 고난을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와 같은 각양각색의 사연들로 넘실거리는 광고 성금이 동아일보사에 끝도 없이 줄을 이었다. 유신정권의 광고탄압은 오히려 전 국민의 언론민주화운동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권력에 굴복한 동아일보사 경영진은 끝내 130여 명의 젊은 기자들(동아방송 소속의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