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2건
더 보기사진사료 1건
더 보기구술 컬렉션 1건
더 보기일지사료 5건
더 보기-
구속학생 석방 범국민운동 펴기로
일자 : 1964.9.11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 | 야당·재야·일반
요약설명 : 20명은 대성빌딩에 모여 6·3시위로 아직도 옥중에 남아 있는 “동료들의 구출을 위해 범국민운동을 벌일 것”을 다짐했다. 이들은 “집권자의 시대착오적·비애국적인 행동윤리를 방관할 수 없어 거리에 나선 것”이라며, “권력인에 대한 반성과 젊은 세대에 대한 관용을 대망하면서 우리들의 목적과 취지가 관철될 때까지 다짐한다”는 요지의 선언문과 석방운동을 위한 결의문(별도 하단)을 채택했다. 이들은 첫 단계로 구속학생 석방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과 옥중 학생들에게 사식을 넣어주기 위해 가두모금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한편 11일 상오 7시부터 중앙대학교 정문 앞에 “구하자 우리 학우들”이란 표어 아래 구속학생...
-
‘6·3동지회’ 결성, 메시지와 선언문 채택
일자 : 1964.11.3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1964113 석7면) 75명(『경향신문』 1964113 석3면)으로 다르게 보도은 낮 12시부터 을지로 2가 대성빌딩 강당에서 모임을 갖고 옥중동지들의 순수한 친목단체로서 ‘6·3동지친목회’를 마련했다. 이들은 취지문을 통해 “3·24에서 6·3에 이르는 학생들의 행동은 애국적인 구국운동이며 결코 난동이 아니었다. 앞으로도 폭넓은 시야로 조국과 역사발전의 정도를 찾아 마음의 자세를 굳게 하겠다”고 밝혔다. 이 모임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와 선언문을 채택하고,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친목을 도모할 것을 결정하였다.『동아일보』 1964.11.3 석7면 『경향신문』 1964.11.3 석3면선언문(결의문)① 6·3데모는 난동이...
-
한비연 주최, 한일협정비준반대 연합궐기대회 개최
일자 : 1965.7.15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반대투쟁임에도 불구하고 무차별 구타, 구금, 퇴·정학 등으로 많은 학우들이 희생을 강요당하였고, 학원 내의 사찰, 매수, 분열공작으로 학원은 더럽혀졌다. 이로써도 우리의 정의로운 투쟁을 꺾을 수 없자, 당국은 계엄령, 휴교령, 조기방학 등을 번갈아 실시하면서 학생을 분산시킴으로써, 민족 양심의 전위대인 학도들의 슬기롭고 용맹스러운 학생운동을 분산 약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이상 욕된 역사의 제물이 될 수 없음을 자각한 우리들은 그 어떤 간교한 기만과 포악한 탄압에도 굴할 수 없으며, 기어이 이 매국회담을 분쇄하고 말 것이다. 우리들은 전 국민이 한 명의 낙오도 없이 더욱 분발하고, 더욱 궐기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