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9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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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부산본부 조직및 임원
등록번호 : 00098448
날짜 : 1987.06.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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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 활동보고
등록번호 : 00190277
날짜 : 1987.09.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직후 국본 부산본부 활동 보고 관련 회의자료 대우조선 이석규 열사 관련 내용과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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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부산본부 활동보고
등록번호 : 00199567
날짜 : 1987.08.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사진사료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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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창공단 삼성중공업 노사분규 현장을 방문하여 찬조연설을 하는 모습
등록번호 : 00701802
날짜 : 1987.08.15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정문앞에 출두시켜 놓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제1차 노동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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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6월항쟁. 독재타도 호헌철폐 깃발과 태극기가 휘날리는 부산가톨릭센터 농성장 옥상
등록번호 : 00957375
날짜 : 1987.06.18
구분 : 문서류 > 필름
기증자 : 정태원
요약설명 : 부산 6월항쟁의 구심 역할을 하게 된 부산가톨릭센터 농성 학생들과 부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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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6월항쟁. 독재타도 호헌철폐 깃발과 태극기가 휘날리는 부산가톨릭센터 농성장 옥상 모...
등록번호 : 00957376
날짜 : 1987.06.18
구분 : 문서류 > 필름
기증자 : 정태원
요약설명 : 부산 6월항쟁의 구심 역할을 하게 된 부산가톨릭센터 농성 학생들과 부산 ...
사료 콘텐츠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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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지마! 최루탄!
요약설명 : 불붙은 민주화의 불길이 삭을 리 없었다. 아니, 그러면 그럴수록 분노의 불길은 더욱 거세게 타올랐고, 군부독재에 대한 거침없는 항쟁은 날로 가속화되었다. “최루탄을 쏘지마!” “군부독재 물러가라!” 애타는 소리가 입에서 입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마침내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는 6월 18일을 ‘최루탄 추방의 날’로 선포했다. 이번에는 구속자 가족 중에서 주로 여성들로 이루어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어머니들이 앞장을 섰다. 삼베수건을 쓴 어머니들은 최루탄 발사기를 들고 서있는 전경에게로 다가가 그들 가슴에다 장미꽃과 카네이션을 달아주었다. 로마병사처럼 생긴 투구와 발사기의 총구에다 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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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아들 박종철 - 부산의 6월항쟁
요약설명 : 했던 노무현 변호사는 네 번이나 구속영장이 신청됐으나 모두 기각되는 기록을 세웠다.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반독재운동을 하던 그의 기를 꺾으려던 검찰의 시도가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만 것이다. 이후 노무현 변호사는 6.10 민주항쟁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시위대의 선두에 서있었다. 박종철의 49재를 맞아 진행된 3.3국민평화대행진과 시민의 힘을 간과해 터트린 전두환 정권의 4·13호헌 조치 그리고 부산대 대학신문사를 대학당국이 무리하게 장악하려는 기도에 저항한 학내민주화운동 등으로 부산 또한 6.10민주항쟁의 서막을 열어가고 있었다. 5월 27일, 대학과 시민사회 모두가 역사상 가장 격렬한 반정부시위에 나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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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역사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요약설명 :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주역인 문부식․ 김은숙 등의 변론을 맡았던 것이다. 그리고 3년 후인 1985년 5월 3일 부산민주시민협의회(부민협) 결성에 참여하고 1986년경부터는 변호사업을 중단하다시피하며 민주화운동에 전념했다. 1987년 6월항쟁의 흐름속에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가 결성되자 부산 국본의 상임위원장을 맡아 부산 민주화운동의 야전사령관이 되어 거리에 나왔다. 이즈음의 그는 인권변호사를 넘어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뛰는 운동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노동자대투쟁이 한창이던 1987년 8월, 노무현은 거제 대우조선 파업현장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진 노동자 이석규의 사체부검과 임금협상을 거들어 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