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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대학교 당국, 휴교령 결정
일자 : 1979.10.18
분류 : 민주화운동 > 학생
요약설명 : 10월 18일 새벽 경남대학교 당국이 정상수업을 하기로 결정하고 오전 11시경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면서 주동자 정인권과 학생집회 책임 행동대원 한양수가 학과 대표들과 만나 오후 1시 30분경 경남대학교 노인당(고목나무 정자) 앞 잔디밭에 집결하여 시위 분위기를 조성했다. 오후 2시경 학생 약 7~800여명이 모여들었다. 오후 2시 15분경 학교 측에서는 긴급 교수회의를 열고 그 결과 학교 휴교령을 결정하고 학교 방송으로 휴교 결정을 알렸다. 경남산업전문대학교도 오후 2시부터 무기한 휴교에 들어갔다. 이은진, 『1979년 마산의 부마민주항쟁 육군고등군법회의 자료를 중심으로』, 불휘, 2008, 133~143쪽. 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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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시민들, 마산 시내 가두시위 전개
일자 : 1979.10.18
분류 : 민주화운동 > 빈민·일반
요약설명 : 오후 6시~7시 사이에 투석이 시작되면서 시위는 폭력적인 양상으로 발전했다. 시위는 3·15의거탑, 창동 네거리, 남성동 파출소, 북마산, 오동교 자유시장, 어시장, 자산동과 시청 방면, 공화당사, 회원파출소, 산호파출소, 양덕파출소, 문화방송국 및 전신전화국, 마산소방서, 마산경찰서 및 마산우체국, 마산지방법원 및 마산 지청 등 시내 전역에 방화와 투석전을 벌이는 등 폭력적인 시위가 전개되었다. 18일의 시위는 19일 오전 2시에 역전파출소 앞에서 종결되었다. 시위자 300여명이 연행되었으며 경찰도 막대한 소실 피해를 입었다. 이은진, 『1979년 마산의 부마민주항쟁 육군고등군법회의 자료를 중심으로』, 불휘, 2008, 165~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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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대학교 학생 1,000여명, 교내 반정부 집회 개최, 시내로 확산
일자 : 1979.10.18
분류 : 민주화운동 > 학생
요약설명 : 통행이 통제되어 오후 4시~4시 30분경 시위를 종료하고 오후 5시~5시 30분경 3·15의거탑 앞에서 모이기로 통고한 후 해산되었다. 경남대학교 학생들은 오후 4시 20분경부터 5시 30분까지 3·15의거탑에 모여들었다. 마산대학생들과 일부 시민들의 합세로 약 500여명이 모인 시위대는 언론자유보장과 민주회복 등을 요구하며 전투경찰대와 대치 상태에 있었다. 오후 5시 30분~6시 30분경 마산시 창동 대진백화점 앞에서 약 200여명의 시위대가 모여 경찰대와 대치했으며, 오후 5시 40분~50분까지 서성동 무학당 앞 노상에서도 시위가 있었다. 이은진, 『1979년 마산의 부마민주항쟁 육군고등군법회의 자료를 중심으로』, 불휘, 2008, 143~1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