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6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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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의 주검앞에 비폭력 결사반대 전면적 폭력투쟁 전투적 가두투쟁 노태우 정권 타도하자
등록번호 : 00901877
날짜 : 1991.05.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박종진2
요약설명 : 더이상 비폭력 평화투쟁에 대한 반대하고 전투적 노학농맹과 전면적 가두투쟁을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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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비폭력 투쟁을 민주화의 그날까지]
등록번호 : 00055722
날짜 : 1986.04.1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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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속보-오늘은 6월 3일 파업 19일째! 비폭력! 질서
등록번호 : 00408439
날짜 : 1989.06.03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인천지역해고노동자협의...
요약설명 : 89년 임투관련 속보. "죽어도 4000천원 살아도 4000천원이다!"
사진사료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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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도로에 드러누워 스크럼시위를 하는 학생들을 제지하는 사복경찰들
등록번호 : 00712996
날짜 : 1987.05.23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대규모 비폭력 평화시위를 계획하고, 각 대학별로 학생활동가들의 비장한 결의를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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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도로에서 학생들을 진압하려는 전경들과 달아나는 학생들
등록번호 : 00714157
날짜 : 1987.05.23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대규모 비폭력 평화시위를 계획하고, 각 대학별로 학생활동가들의 비장한 결의를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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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이 전경을 피해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
등록번호 : 00741483
날짜 : 1987.05.23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대규모 비폭력 평화시위를 계획하고, 각 대학별로 학생활동가들의 비장한 결의를 모...
사료 콘텐츠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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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민주항쟁 구술 서비스 영상 공개
요약설명 : 항쟁 지도부, 헌신적으로 투쟁에 나서며 비폭력 연와시위를 벌였던 대학생들, 대학생과 함께 집회에 참가했던 고등학생, 점심시간과 퇴근 후 대열에 동참했던 회사원들, 농사를 지으며 매일 오후 경운기를 타고 시내 집회를 나섰던 농민, 6·29선언 이후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던 노동자들의 기억을 담고 있다. 6월항쟁의 역사정리는 계속되어야 한다 6·10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하여 추진한 <6·10민주항쟁 구술사업>은 그동안 역사로 기록되지 못했던 6월항쟁의 내용과 인물을 발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구술사업에서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과 6·29선언 이후부터 대통령 선거에 이르는 과정, 1987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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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거리의 연와투쟁, 6.10민주항쟁을 예고하다
요약설명 : 명의 학생들은 비 내리는 종로 거리의 아스팔트에 옆 사람과 팔짱을 끼고 드러누워 연와투쟁에 돌입했다. 학생들은 전원 구속을 각오하고 투쟁을 결단했다. 시위에 나오기 전에 부모님과 친구, 후배들에게 마지막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날 시위대의 중추는 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을 떼어내려 해도 떨어지지 않자 경찰은 무자비하게 발길질과 주먹질을 했고, 누워있는 사람들 위로 사과탄을 던졌다. 학생들의 머리, 어깨, 다리 위로 방패날이 날아들었다. 지켜보던 시민들이 보다 못해 말리기 시작했고, 학생들을 응원하면서 경찰들에게 야유를 보내는 동시에 거칠게 항의했다. 연행되던 일부 학생들이 시민들에게 구출되기도 했다. 돌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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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민주화와 인권을 향한 열망
요약설명 :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구국투쟁임을 확신하고 이 비폭력의 평화적 운동을 전폭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개헌서명운동이 순탄하게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4월 27일 각 교회별로 서명을 진행하기 위해 교회마다 서신을 발송하고 각 교회 목사와 전화를 통해 혹은 직접 만나서 협조를 요청하였으나 일부 교회가 교회 내에서의 정치활동을 원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교회의 태도에 대해 안영삼 선생은 ‘일개 목사가 수많은 교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곳이지 정치운동하는 곳이 아니라는 냉대에 바로 그 자신이 독재를 자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회개를 해야...
구술 컬렉션 1건
더 보기일지사료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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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대학 학생 100-200명 시위
일자 : 1960.4.13
분류 : 시위 상황 > 마산
요약설명 : 바친 주열 군의 정신을 우리들 학생은 영원히 기억하며 그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우리는 무저항으로 투쟁을 계속할 것이다.”라는 선언문을 낭독하였다. 학생들은 “우리는 비파괴주의로 대항한다”, “우리는 비폭력주의로 대항한다”, “우리는 무저항으로 대항한다”등의 구호를 외치고 “민주주의 만세”를 외쳤다. 병원 주변에 운집해 있던 시민들은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질서정연한 시위는 ‘학도호국단가’등을 부르며 “폭력을 없애라”, “민주주의 바로잡자”라고 쓴 피켓을 들고 경찰의 제지 없이 구마산 일대를 행진하며 계속되었다.『마산일보』1960. 4. 14 2면 ;『조선일보』1960. 4. 13 석3면 ;『동아일보 1960. 4. 14 조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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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 살해사건 진상규명투쟁위원회 등 8개 단체, 공동 건의서 제출
일자 : 1960.6.28
분류 : 과거사 진상규명운동
요약설명 : 28일, 한독당 및 백범 김구 선생 살해사건 진상규명투쟁위원회 등 8개 단체가 공동으로 김구 선생 살해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건의서를 관계당국에 제출하였다. 건의서에는 “장면 박사 저격진상이 규명되듯 백범 김구 선생이 살해당한 경위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법 이론을 집어치우고 과단성 있게 규명 해 달라”는 내용과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비폭력·무저항으로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결의가 표현되었다.『동아일보』 1960. 6. 29 석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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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대학에서 계속 단식 및 성토대회
일자 : 1965.6.30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비폭력적인 단식투쟁은 이기기 마련이다. 때가 되면 나도 단식에 동조하겠다”고 밝히고, 약 30분간 학생들을 위로하는 연설을 했다. 단식학생들은 7월 1일 정오에 단식을 일단 끝내고 의대 현관 앞에서 학생들과 교수들이 수집한 일제물건을 불태우는 한편, 학생들이 가두에 나서서 일제상품 불매 동맹 백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건국대=30일, 단식 3 째인 건국대 축산대학생 260여 명은 동교 축산대학 기숙사에서 모든 일본 상품을 보이콧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은 지난 28일 한일협정비준반대와 전 국민들의 각성을 촉구하면서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었다. 한편 이들 단식학생들은 30일 오전 단식으로 절약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