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39건
더 보기-
[사랑방교회와 갈릴리교회의 자매결연증서]
등록번호 : 00953860
날짜 : 1976.01.2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사랑방교회와 갈릴리교회가 자매결연을 맺고 이를 쭉 유지하겠음을 맹세한 증서
-
사랑방교회에서 사랑의 교제를 함께 나눕시다
등록번호 : 00066951
날짜 : 19**.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
1975년 활동자료 사랑방교회의 생성역사-중량천철거 사랑방교회
등록번호 : 00102816
날짜 : 1975.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사진사료 1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2건
더 보기-
어둠의 자식들의 아버지 - 허병섭 목사
요약설명 : 희생자가 나온 상태였다. 그는 이철용과 함께 빈민 스스로가 만든 최초의 민중 교회인 사랑방교회를 세워 철거민들을 그리스도의 사랑 안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사랑방교회마저 철거가 되던 날, 화려하게 빛나지는 않았지만 멀리서 바라만 봐도 힘이 되었던 십자가는 철거반원들에 의해 똥통에 처박히고 말았다. 당시 위급한 상황에 함께 했던 문익환 목사는 똥 묻은 십자가를 치켜들고 통곡했다. 이듬해에는 3‧1민주구국사건으로 많은 민주인사들이 구속되었다. 허병섭 역시 연행되어 조사받고 고문당하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리고 이어진 6개월의 수배생활 끝에 그는 하월곡동에 자리를 잡고 교인들이 교회의 주인이 되는 민주 교회를 지향하는...
-
기자회견의 메카_ 추억의 세실레스토랑
요약설명 : 느껴졌다. 이화여고 지나 정동교회, 구세군회관, 아기자기한 건물들 곳곳에 추억의 그림자가 스며있었다. “언젠가 가을, 노란 은행잎이 지천으로 깔려있던 날, 당신이랑 이 길을 걸어본 게 벌써 아득하구려.” 아내는 경식의 팔짱을 끼고 함께 돌담 위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푸른 눈빛의 청춘도 눈 깜박할 새 지나가 버리고 둘 다 세월의 흔적처럼 눈가에 주름살이 잡히고 머리도 희끗희끗 반백이 된 지 오래다. “그나저나 이제 곧 문을 닫을 거라고 하니 아쉽네요. 우리가 친구 소개로 첫 미팅을 한 곳인데... 거기서 만나면 뭐든 이루어진다고 했잖아요.” “그렇지. 그래서 당신이랑 내가 이렇게 평생 한...
구술 컬렉션 2건
더 보기일지사료 2건
더 보기-
한국특수지역선교위원회 실무자, 수사 당국에 연행 시작
일자 : 1976.5.25
분류 : 민주화운동 > 재야·지식인·종교
요약설명 : 해결한다’는 전단과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는 선언문 형식의 유인물이었다. 5월 26일 수사 당국은 석방한 황인숙을 재차 연행하고 한국특수지역선교위원회 사무실을 수색하여 타자기·장부·활동보고서·책자 등을 압수하였다. 28일에는 한국특수지역선교위원회 실무자 이규상 전도사가 서대문경찰서 형사에게 연행되었다가 곧바로 대공분실로 옮겨져 조사를 받았다. 판자촌 지역 주민 이태용과 사랑방교회의 교인 다수도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또한 29일에는 한국특수지역선교위원회 사무실이 또 다시 수사 당국에 수색당하여 회계장부 및 빈민 선교에 관한 자료들이 압수당했다. 이어서 31일 한국특수지역선교위원회 실무자 김경남이...
-
사랑방 교회 김홍조와 한국특수지역선교회 훈련실무자들이 연행됨
일자 : 1976.6.12
분류 : 민주화운동 > 재야·지식인·종교
요약설명 : 1976년 6월 12일 사랑방교회 교인 김홍조와 한국특수지역선교회 훈련실무자 김정호가 연행되었고 13일에 훈련실무자 최종진이 연행되었다. 김정호와 최종진은 16일에 석방되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1970년대 민주화운동』 (Ⅲ), 1987, 9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