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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및 성토대회” 한일굴욕외교반대학생총연합회 주최로 열려
일자 : 1964.5.20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각 대학의 한일굴욕회담반대투쟁위원회의 위원장과 소속 학생들이 연합한 조직으로, 그 구성원들은 3·24데모 이래 대체로 온건한 경향을 띤 총학생회를대신하여 학생운동을 주도하였다.(유영렬, 「6·3학생운동의 전개와 역사적 의의」, 『한국사연구』88, 1995, 146쪽)(회장 김중태) 주최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및 성토대회”가 서울대 문리대 교정에서 학생 3,000여 명과 시민 1,000여 명동아일보에는 예상보다 훨씬 적은 1,500여 명의 학생들이 참가했다고 보도(『동아일보』 1964.5.20 석1면)이 모인 가운데 거행되었다. 학생 측은 이날 아침 결의문, 격문, 선언문, 조사 등을 프린트해서 각 대학에 돌린 후 경찰의 감시망을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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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태 등 공소장 내용 발표 정부전복기도내란죄를 적용
일자 : 1964.6.17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현사태는 정부전복의 요인이 됨에 충분하다고 생각,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세칭 3·24, 3·25, 3·26 성토대회 및 불법시위로 김중태가 구속되고 각 학교의 동조적 반응이 보이자 국민여론을 환기 동조케 할 목적으로 시위의 계속을 공모, 현승일, 김도현 등이 주동, 세칭 4·17 한일회담 성토, 4·19 영령 추도식, 4·20, 4·21 난동시위로 민심을 교란하고 반정부적 감정의 조장과 무정부적 무질서 상태를 초래케 하여 극도의 정국불안이 조성되자 일부 국민이 호응한다는 착각 아래 대안 없는 한일회담 무조건 반대를 표면상 구호로 정부의 고시책에 불만을 품고 정부전복을 획책했다. 피고인 김중태 및 현승일은 64년 5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