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9건
더 보기-
긴급속보:우리데이타 위장폐업 철회투쟁 14일째 철야농성중-옥상에서 유인물 뿌리던 규찰대원 ...
등록번호 : 00535367
날짜 : 1988.08.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YMCA전국연맹
요약설명 :
-
민중의 소리 속보
등록번호 : 00099165
날짜 : 1986.03.19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옥상에서 이 회사 노동자 박영진씨가 하루 기본 근무 시간을 9시간에서 8시간으로...
-
진실은 끝내 승리합니다!
등록번호 : 00397517
날짜 : 1989.09.1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인천지역해고노동자협의...
요약설명 : 2. 옥상농성 기간중 누가 협상을 거부하였는가? 3. 도대체 누가 살인자인가? 4. 지금...
사진사료 80건
더 보기-
입에 마스크를 두르고 옥상 농성중인 학생들이 망을 보고 있는 모습
등록번호 : 00741512
날짜 : 1986.10.3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
망을 보는 학생들과 회의를 하는 학생들이 모여있는 건국대학교 옥상 농성 현장
등록번호 : 00741513
날짜 : 1986.10.3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
사무용 집기들이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는 건국대학교 옥상 농성 현장
등록번호 : 00741515
날짜 : 1986.10.3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사료 콘텐츠 3건
더 보기-
열세살 시다 - 신순애 이야기
요약설명 :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가짜 쌀가마 신순애는 평화시장 옥상에서 13일간 계속되었던 농성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때 농성을 벌인 주요 이슈는 퇴직금 문제였는데, 10인 이상의 사업장에서는 종업원이 퇴사 시 퇴직금을 지급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미리 옥상에다가 쌀을 한 스무 가마 쌓아 두었어요. 우리가 오랫동안 버틸 준비를 다 했다는 걸 보여 주려고. 그 때는 경찰들이 헬리콥터로 옥상 위를 촬영했거든요.” 그러나 이 쌀가마니에는 비밀이 있었다. 거기에는 쌀이 없었던 것이다. 공장에서 나오는 기레빠시(천 조각)를 잔뜩 가져다가 가마니 안에 넣어 쌀가마니처럼 보이게 만들고 퇴직금 문제가...
-
부마항쟁
요약설명 : 전 야당 신민당사에서 YH무역 여공들이 생존권을 요구하며 농성하다가 무참히 끌려갔고, 박정희 정권은 농성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신민당 김영삼 총재를 국회의원에서 제명해 버렸다. 이에 이틀 전 부산에서 격렬한 반독재 시위가 일어났고, 경남대에서도 학과대표들이 주동이 되어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그러나 오후 3시가 되어 3천 명이 모이도록 앞에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선배 하나가 정인권에게 말했다. “나설 사람은 인권이 너밖에 없다. 니가 연설을 잘하니까 나서 봐라.” 왜 하필 내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정인권이 머뭇대고 있는데, 도서관 옥상에 1학년 학생 몇이 서성대는 게 보였다. 사고가 터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어쩔...
-
고(故)이세종, 전주의 5.18희생자
요약설명 : 전북대 학생회관 2층에서 동료학생 1백여 명과 함께 '비상계엄 철폐 및 전두환 퇴진' 을 요구하며 밤샘 농성을 벌이다가 건물에 진입한 7공수 부대원들에 쫓겨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5월 18일 새벽, 온몸이 멍들고 피투성이가 된 채 발견되었다. 검찰은 이세종의 사인을 학생회관에서 추락사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 주검을 검안했던 전북대병원 이동근 교수는 추락 전 계엄군의 집단 폭행 가능성을 제기했고, 한겨레신문은 1993년 3월 22일, '80년 5.18의문사 전북대생 계엄군 집단구타사 가능성'을 보도하였다. "당시 이씨의 주검에는 검안서상의 손상 외에도 가슴과 등, 옆구리 등에도 타박상이 있었으며 골절의 양상도...
구술 컬렉션 1건
더 보기일지사료 10건
더 보기-
서울대 법대생, 개헌반대 단식농성
일자 : 1969.9.1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은 .반개헌, 반독재’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옥상에 설치한 마이크로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개헌반대를 호소했다.서울법대 학생운동사 편찬위원회 편, 『서울법대 학생운동사: 정의의 함성 1964~1979』, 블루프린트, 2008, 52쪽, 『대학신문』 1969.9.8. 3면단식 제1선언문일개인 권력욕의 제물로 오도되고 있는 역사의 차륜을 바로잡으려는 우리의 애국적인 기도와 평화적 시위는 독재아성의 주구인, 폭도화된 경찰에 의해 무자비하게 탄압 ·봉쇄되고 이 땅의 지식인들조차 권력의 시녀로 전락되고 있으며 진리와 정의의 전당인 학원이 폐쇄되고 있는 지금, 조국의 민주주의는 진정코 사멸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
서울대 문리대생, 비상시국선언문 발표 후 3선개헌반대시위
일자 : 1969.9.1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강당옥상으로 올라가 마이크를 가설하고 선언문을 낭독하여 밤새 농성을 계속했다.『동아일보』 1969.9.1. 3면, 『대학신문』 1969.9.8. 3면비상시국선언문어두운 심연 밑에서도 이제 다시금 채워진 굴레를 벗고자 우리의 거센 불길은 타올랐다. 그것은 자유와 민주로 점철된 대학의 역사였으며 독재의 피비린 재현을 목매는 정의였었다. 우리가 다시금 상기하는 것. 져버린 꽃잎들, 꽃잎들의 붉은 피, 피로 얻은 4월의 자유. 어제는 5월의 태양 아래서 짓밟혔었고, 오늘은 거대한 군화 밑바닥에서 한낱 말라붙은 개구리가 되어버린 대학의 잔인한 영상인 것을. 우리는 어째야 했겠는가. 우리는 일어섰다....
-
서울대 농대생, 3선개헌반대농성
일자 : 1969.9.10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10일 오전 7시 서울농대생 50여 명은 휴교 중임에도 기숙사 건물 옥상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3선개헌반대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9일 오후 기숙사에 든 농대 1년생 320명을 대상으로 개헌찬반에 따른 앙케트를 실시, 반대 97% 찬성 3%의 결과를 얻었다. 이들 학생들은 10일 오전 10시 반 휴교조치를 모르고 등교한 학생 100여 명과 합세, 가두시위를 벌이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고 다시 농성에 들어갔다.『동아일보』 1969.9.10.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