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3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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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ソ連邦日本?大使館에서 李德林에게 보내는 편지]
등록번호 : 00059882
날짜 : 1971.11.1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국문제일본기독교긴급회...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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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ソ連邦日本?大使館에서 フエヅョ에 보내는 편지]
등록번호 : 00059886
날짜 : 1963.08.0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국문제일본기독교긴급회...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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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스크랩]교포들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하는 모습
등록번호 : 00860632
날짜 : 1987.05.01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박문규
요약설명 : 교포들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하는 모습 사진
사진사료 5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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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 방일 반대시위로 휴무에 들어간 주한 일본대사관
등록번호 : 00718888
날짜 : 1990.05.22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주한 일본대사관은 22일 상오 "오는 23~25일 3일간 영사부 사무를 휴무한다"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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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후 일본총리 방한과 관련해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삼엄한 경계 근무를 서는 전경들
등록번호 : 00718970
날짜 : 1991.01.0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가이후 일본총리 방한반대 집회 및 시위가 잇달아 있는 가운데 경찰이 9일 상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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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사관과 경복궁
등록번호 : 00722855
날짜 : 1995.00.0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일본대사관 터가 풍수학적으로 수도 서울의 주산인 북악의 정기를 빼앗을뿐 아니라...
사료 콘텐츠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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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선생님이 전하는 주한 일본 대사관 이야기
요약설명 : 1. 일본 대사관의 위치와 인상 「한국 속의 일본」은 일본 대사관 꼭대기의 일장기만큼이나 힘차게 펄럭이고 있다. 중앙청 앞 광장을 오른쪽으로 꺾어 한국일보 건물이 끝나는 길목을 끼고 들면 바로 거기에 일본 대사관이 있다. 대사관이 서 있는 땅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중학동 18의 2. 760여 평의 대지에 과히 넓지 않은 앞뜰만을 제외하고 말쑥한 색깔로 올려 지은 지하 1층에 지상 5층의 건물 앞에 서면 전체 건물의 크기에 비해 어울리지 않게 작아 보이는 각층의 창문이 「마지노」선의 거대한 토치카의 총안 같은 인상을 준다. 건물 전체의 개방적인 격식과 호사하고 부드러운 색깔이 아니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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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림사건을 딛고 우뚝 선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
요약설명 : 요원이었던 것이다. 납치조 일행은 윤이상을 데리고 쾰른을 경유해 본의 대사관으로 갔다. 그곳 다락방에 윤이상을 감금한 그들은 여러 날 동안 잠 안 재우기 고문을 하면서 협박과 공갈로 거짓 자백을 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괴롭혔다. 며칠 후, 그들은 윤이상을 비행기에 태워 일본을 경유한 뒤 한국으로 끌고 갔다. 대한민국 정부의 사주를 받은 중정 요원들이 국제법을 위반하면서 납치극을 벌인 것이다. 얼마 후, 독일의 주요 신문에 이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한국 출신의 저명한 음악가 이상 윤(Isang Yun), 백주 대낮에 유럽 한복판에서 납치되다!” 윤이상 납치 사건은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유럽의 음악가들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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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 광주를 기록한 월요모임의 사실보고서(Fact Sheet) #59
요약설명 : 미 대사관 관계자, 정부기관의 관계자, 혹은 외신기자들에게 수집한 한국에 대한 정보, 해외통신 및 저널 그리고 한국에서 발행한 성명서, 유인물, 사건 당사자나 구속자 가족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들을 수집하여 작성하였다. 이렇게 작성된 보고서는 필요에 따라 한국에서 발행된 성명서, 탄원서 호소문과 신문기사를 번역하여 함께 묶음으로써 하나의 보고서가 완성되었다. 이런 문서들이 외국으로 나가는 것은 굉장히 힘들었다. 월요모임 구성원들이 직접 운반하거나, 선교사, 기자, 사업가들의 여행가방, 미군 우편 등을 통해 일본과 미국 등 한국을 지원할 수 있는 교회 관계자들이나 외국의 저널리스트들에게 전달되어 전세계에...
구술 컬렉션 1건
더 보기일지사료 5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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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오리(亡國汚吏) 유태하 물러가라
일자 : 1960.4.23
분류 : 시위 상황 > 도쿄
요약설명 : 쓴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였다. 주일대사관 사무실 내부로 진입한 시위대는 유태하주일대사가 한국의 시위상황을 공산주의의 책동으로 언급한 데 격분하여 그를 거칠게 몰아붙이면서 사임을 강요하였다. 일부 일본 신문들은 일단의 민단계 교포들이 유대사가 서울로 보낸 사임전문을 그들에게 보일 때까지 그 옆에 서 있었다고 보도하였다. 그 전문은 서울의 외무부로 보낸 것으로, 유 대사가 일주일 내에 사직하고 귀국하겠다는 것을 통고하는 내용이었다. 이날 시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민단간부들이 나와 있었으나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이 광경을 취재 촬영하려고 수많은 내외기자들이 모여들어 대표부 앞 길은 일대혼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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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무부, 일본 정부에 유태하의 신병 인도 요구
일자 : 1960.12.27
분류 : 혁명입법과 혁명재판
요약설명 : 27일, 외무부는 전 주일대사유태하에 대한 일본 정부의 추방령을 주일대표부를 통해 확인하였다. 정일형외무부장관은 주일대표부의 보고를 받은 후 일본 정부에 유태하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고 유태하가 소유한 외교관 여권이 취소된 사실을 통고하였다. 한편 외무부는 유태하가 도피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 홍콩이라고 전해짐에 따라 주한 영국대사관을 통해 홍콩 정부에 유태하가 소지한 외교관 여권은 무효 임을 공식적으로 통고하고, 비공식적으로 망명을 허용치 말라고 요청하였다.『경향신문』 1960. 12. 27 석1면 ; 『조선일보』 1960. 12. 27 석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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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의장, 한일국교 조속 정상화하기로 이케다와 합의했다고 밝혀
일자 : 1961.11.16
분류 : 한일협정추진 > 한국정부
요약설명 : (워싱턴 16일발 AP합동통신) 16일, 한국국가재건최고회의박정희 의장은 일본의 이케다 수상과 한일 양국이 가능한 한 속히 국교를 정상화한다는 데 합의를 보았다고 말하였다. 주미한국대사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박 의장은 이번에 그의 미국방문과 여러 가지 국제 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케다 일 수상과의 11일 동경회담에 대해 “우리는 매우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상호의 문제에 관하여 서로 의견을 교환하였다. 우리는 한일양국이 특히 극동의 평화와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될 수 있는 대로 빠른 기회에 국교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데 완전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고 밝혔다.『동아일보』 1961.11.18 조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