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31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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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남북 6자실무회담 방해규탄 및 평양축전 참가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는 전대협...
등록번호 : 00833785
날짜 : 1989.06.1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한겨레신문사
요약설명 : 남북 6자실무회담 방해규탄 및 평양축전 참가결의대회'에 참석한 전대협의장 임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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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실 언협 민문연 문화3단체 합동농성 현수막
등록번호 : 00915192
날짜 : 1985.08.29
구분 : 문서류 > 필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민중문화운동협의회 3단체는 자실 사무실에서 언론기본법 철폐 등을 요구하며 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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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실 언협 민문연 문화3단체 합동농성 장면
등록번호 : 00915195
날짜 : 1985.08.29
구분 : 문서류 > 필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민중문화운동협의회 3단체는 자실 사무실에서 언론기본법 철폐 등을 요구하며 합동...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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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은 칼보다 강하다 -민주화를 향한 문인들의 기개
요약설명 :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설립 1972년 10월유신 다음해인 1973년 유신헌법 철폐를 위한 재야인사들의 개헌청원운동이 시작되었다. 1973년 12월 24일 백범사상연구소가 서울 YMCA에서 개최한 '민족문학의밤'에서 함석헌, 장준하, 계훈제, 백기완 등 각계 민주인사들이 '개헌청원운동본부'를 발족시켰고, 열흘 만에 10만명의 서명을 받는 등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이에 독재 정권은 12월 29일 대통령 담화를 발표하여 개헌서명운동을 즉각 중지할 것을 요구했으나, 오히려 문인들은 1974년 1월 7일 ‘문인 61인 개헌지지성명’을 발표했다. 그러자 정부는 1월 8일 17시를 기해 헌법을 부정,반대,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 및 헌법의 개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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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실천문인협의회 - 표현의 자유를 온 몸으로 외친 문인들
요약설명 : 나타냈다. 비로소, ‘자유실천문인협의회’(자실)라는 명칭이 만장일치로 통과되는 순간이었다. 자실의 대표간사에는 스스로 고난을 자처한 시인 고은이 뽑혔고, 간사에는 신경림, 염무웅, 박태순, 황석영, 조해일이 뽑혔다. 선언문에 서명으로 동참할 문인들을 찾는 일은 의외로 쉬웠다. 문인들 대부분이 자신도 이 선언문에 참여하겠다고 자청했던 것이다. 서명자 수가 딱 100명이 되었을 때 박태순이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100명도 좋지만 101명이면 더 좋겠는데…….” 그때 전화로 서명에 가담한 사람이 작가 이문구였다. 이문구의 동참으로 선언문의 이름은 〈문학인 101인 선언〉이 되었다. 이 선언문을 시인 양성우가 밤새 등사원지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