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4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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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재단사연합회 정관
등록번호 : 00876395
날짜 : 1984.02.2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전지역 재단사의 친목을 도모하며 굳은 단결을 통하여 청계지역의 어려운 작업현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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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재단사연합회 회원가입원
등록번호 : 00886083
날짜 : 198*.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사람은 청계재단사연합회 회원으로 가입하기를 희망하오니 받아주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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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사에게 드리는 인사장 작성및 배부[발신:교선부]
등록번호 : 00876394
날짜 : 1974.04.17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재단사의 비협조로 인한 조합가입이 부진하여 재단사 모두에게 지부임원 일동으로...
사진사료 2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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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청년 재단사의 꿈
요약설명 : 노동을 시키면 다른 사업주들도 따라 하지 않을까 하는 공상도 나누고, 좋은 재단사들이 모임을 만들어 근로조건개선에 앞장서자는 제안도 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삼동회였다. 청계천 일대의 세 곳의 옷 제조상가 재단사들이 모였다는 뜻이었다. 1970년 가을, 삼동회원들은 매일이다시피 만나서 평화시장의 근로조건개선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짜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외로운 객지생활에 좋은 친구들을 만나 술 마시고 노는 데 더 재미를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때문에 친구들은 술과 담배도 하지 않고 만나면 오로지 근로조건 개선 이야기만 하는 전태일에게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한 잔 마셔! 태일이가 술 안마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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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이념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전사 시인 김남주
요약설명 :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피복공장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라고 외치며 온몸에 휘발유를 붓고 분신한 사건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이 사건은 노동자를 착취하여 소수의 부유층을 살찌게 했던 박정희 정권의 추악함에 맞선 거대한 항거의 씨앗이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지식인과 노동자가 연대하여 투쟁해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 된 김남주는 한일회담 반대와 교련반대운동, 3선개헌저지투쟁, 노동삼권 보장운동 등에 앞장섰다. 1972년에 김남주는 친구 이강과 더불어 유신헌법에 맞서 전국 최초의 지하신문 《함성》지를 제작하여 반독재 민주화의 선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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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한 영혼, 조영래 변호사
요약설명 : 재단사 전태일이 몸에 석유를 끼얹고 분신자살을 감행했다. 그는 불길 속에서 쉼 없이 외쳐댔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숯처럼 까맣게 된 전태일은 목숨이 꺼져 가는 순간에도 한 손에 근로기준법 책자를 쥐고 있었다. 빈소로 찾아간 조영래는 전태일의 영정 사진을 보며 먹먹한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를 썼다. 전태일의 분신자살은 한국 사회에 노동자의 존엄한 권리문제를 근본적으로 일깨운 일대 사건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조영래의 삶의 행로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1971년 봄, 제13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조영래는 사법연수원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에...
일지사료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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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청, 평화시장 실태조사
일자 : 1970.10.7
분류 : 분류없음 > 기층민중
요약설명 : 나이 어린 여자 등이 좁은 방에서 하루 최고 16시간이나 고된 일을 하며 보잘것없는 보수에 직업병까지 얻고 있어 근로기준법을 무색케 하고 있다. 이들은 서울 시내 청계천 5~6가 사이에 있는 평화시장 내 각종 기성복 가공업에 종사하는 미싱사, 재단사, 조수 등 2만 7천여 명으로 노동청은 7일 실태조사에 나서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업체는 모두 고발키로 했다.『경향신문』 1970.10.7.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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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복제조 종업원들이 대우개선 농성
일자 : 1970.11.13
분류 : 분류없음 > 기층민중
요약설명 : 13일 오후 2시 30분경에 동신상가재단사최종인 씨(38) 등 6명의 피복제조 종업원들이 을지로6가 국민은행 평화지점 앞에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내용의 혈서와 함께 대우개선을 요구하는 농성을 10분간 벌이다 경찰의 제지를 받고 해산했다.『동아일보』 1970.11.14. 7면; 『한국일보』 1970.11.15.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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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우개선을 두고 투쟁하던 삼동회 회장 전태일, 분신자살
일자 : 1970.11.13
분류 : 분류없음 > 기층민중
요약설명 : 13일 낮 1시 35분경 처우개선 등을 위해 투쟁을 지속하던 평화시장, 통일상가, 동화상가 등의 피복제조 종업원 8천여 명의 친목단체인 삼동회 회장 전태일 씨(23·재단사)는 회원 10여 명과 함께 업주들의 불성실한 태도에 항의, 국민은행 평화지점 앞에서 농성을 벌이다 “근로기준법을 지켜주고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온몸에 휘발유를 뿌려 분신자살을 기도, 중화상을 입고 성모병원에 입원가료 중 이날 밤 10시경 숨졌다.『동아일보』 1970.11.14. 7면; 『경향신문』 1970.11.14. 7면; 『한국일보』 1970.11.14. 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