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76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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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국인문제위원회 위원명단
등록번호 : 00844651
날짜 : 198*.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재일교포들의 인권문제와 관련한 재일한국인문제위원회 위원들의 명단을 기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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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국인인권문제 분과위원회 회의순 및 88년도 사업보고]
등록번호 : 00853738
날짜 : 1989.01.3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서명운동, 재일한국인의 인권문제 등... 재일한국인인권문제분과위원회 식순 및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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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한국인 법적지위 향상 및 지문날인 거부를 위한 서명운동 취지문
등록번호 : 00853758
날짜 : 1984.06.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시달리는 재일동포 문제 및 일제 강점기 피해보상 문제, 교과서 왜곡 문제 등 에 ...
사진사료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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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의 6월민주항쟁
요약설명 : 있다고 밝힌 가운데, 오사카에서는 한민통(한국민주통일연합) 등에 결집한 재일한국인들이 오오기마찌 공원에서 ‘민주헌법쟁취 재일한국인 관서(關西)긴급투쟁본부’를 설치하고, 한국 민주화 투쟁을 지원 연대하는 행동을 전개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6.26국민평화대행진’에 연대하고, 한국 민중의 투쟁에 부응해서 한국 민주화 투쟁 지지를 외쳤다. 6월 26일과 27일에는 오사카 한국영사관 앞에서 국제연대 단체 등이 주최하는 연대시위가 열렸고, 오사카 중심가에서는 6.10민주항쟁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시가행진이 있었다. 한국의 민주화를 지지하는 연대투쟁은 이미 결성되어 활동해온 한국민주 연대단체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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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일보와 조용수 - “총에 꺾인 펜”
요약설명 : 이런 비인도적인 행위를 여러분이 막아주십시오!” 재일한국인 우익단체인 민단의 조직부 차장 조용수였다. 수십 명의 일본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29살 한국인 청년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때 중년의 신사가 긴장된 표정으로 다가와 조용수에게 귀엣말을 했다. 민단 간부인 이강훈이었다. “예? 조봉암 씨가 처형당했다고요?” 조용수는 확성기를 다른 이에게 넘기고 뒤로 물러섰다. 그는 건물 계단에 주저앉아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피워 물며 이강훈에게 말했다. “악랄한 이승만! 공산주의에 반대해 투쟁한 조봉암을 공산주의의 간첩으로 몰아 죽이다니요! 재일동포가 북송되는 것은 방치하면서 반공애국자를 빨갱이라고...
구술 컬렉션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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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지 츠토무(東海林勤)
면담자 : 권형택
일자/장소: 2015. 10. 8./도쿄 사쿠지코엔 자택
요약설명 : 출생과 열악한 환경에서 보낸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 결핵 투병, 계시의 영적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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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지마 무네토시(前島宗甫)
면담자 : 권형택
일자/장소: 2015. 10. 6./오사카 재일한국기독교회관 회의실
요약설명 : 기독교와의 인연, 일본 교회의 전쟁책임 고백, 오재식·박형규·권호경과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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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중도
면담자 : 권형택
일자/장소: 2015. 10. 7./가와사키시 후레아이관
요약설명 : 및 재일한국인 차별로 어려웠던 학창시절, 대학 중퇴 후 방랑생활, YMCA 활동하며...
일지사료 4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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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국인들, 시위사건에 대한 성명서 발표
일자 : 1960.4.20
분류 : 시위 상황 > 일본
요약설명 : (토쿄 20일발 동양통신) 재일한국거류민단은 20일 오후 시위사건에 관한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민단성명서는 한국의시위에 깊은 유감의 뜻을 표명하고, 되도록 조속한 시일 내에 질서와 평온을 회복하기를 호소하였다. 한편 재일대한청년단도 성명서를 발표하여 한국 학생들의 시위에 대한 경찰의 폭력행사를 규탄하고 발포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다. 이 성명서는 이어서 “정부는 깊이 반성하고 전 책임을 지고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이번 시위는 친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사주된 것이 아니라 이승만 정권의 비민주주의적 행태에 대한 청년들의 반항을 표시한 것이다”라고 말하였다.『동아일보』1960. 4. 21 석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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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오리(亡國汚吏) 유태하 물러가라
일자 : 1960.4.23
분류 : 시위 상황 > 도쿄
요약설명 : 23일발 AP·동화통신) 본국에서 발생한 경찰의 테러행위에 격분한 재일한국인들은 약 2시간 동안 3·15선거의무효와 선거의 재실시, 유태하주일대사의 퇴진을 요구하였다. 유학생과 교포 60여 명은 23일 주일한국대표부 앞에서 태극기와 단기(團旗) 그리고 “물러가라, 망국오리 유태하”“3·15 망국선거는 무효다”“악질 경관을 극형에 처하라”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였다. 주일대사관 사무실 내부로 진입한 시위대는 유태하주일대사가 한국의 시위상황을 공산주의의 책동으로 언급한 데 격분하여 그를 거칠게 몰아붙이면서 사임을 강요하였다. 일부 일본 신문들은 일단의 민단계 교포들이 유대사가 서울로 보낸 사임전문을 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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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신문들, “한국 제2의 해방 맞아 대서특필”
일자 : 1960.4.27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국제관계 및 해외보도
요약설명 : 재일교포는 “한국은 제2의 해방을 맞았다”라고 축하한다며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도쿄거리에는 이 대통령의 사임발표가 전광판에 밤새도록 보도되었고, 시민들 사이에는 한국사태가 화제에 오르고 있으며, 음식점에서는 한국인들의 축배가 거듭되고 있다. 또한 일본인 가정에서도 TV, 라디오 및 신문들이 경쟁적으로 한국의 평화 혁명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한국 학생들의 용감하고 이성적이며 애국적인 거사는 일본의 언론계와 정계, 그리고 청년과 학생들에게 큰 자극과 영향을 주었다. 또한 현재 진행 중인 미·일안보조약개정 반대시위운동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한국 학생을 본받으라”는 구호까지 유행되고 있다.『조선일보』1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