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 컬렉션 2건
더 보기일지사료 2건
더 보기-
대학생들 대규모 시위, 고려대·서울대 등 약 3,000명
일자 : 1964.6.2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2일의 시위를 주도한 학교는 고려대였다. 그동안 온건, 소극적이던 총학생회와 노선을 달리하며 고려대 한일협정반대투쟁을 주도하던 정경대, 법대, 상대 등 단과대학 학생회는 6월 1일 구국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다음 날인 2일 전면적인 가두시위를 벌였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화운동사 1』, 돌베개, 2008, 426쪽에서 재인용) ▶고려대 2일 상오 11시, 약 2,000명고려대 시위참여 학생 수에 대해 1,000여 명(『경향신문』 1964.6.2 석1면), 1,500명(서중석, 「6·3사태: 64년 봄의 한일회담 반대시위」, 『신동아』, 1985년 6월호, 314쪽)으로 다르게 쓰고 있음의 고려대 학생들은 동교 종합배구장에서 구국투쟁궐기대회를 열고,...
-
학생데모 확대일로 시내 각 대학생 15,000여 명 “박정권 물러나라” 외치며 데모
일자 : 1964.6.3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서울 시내 각 대학생 7,000~8,000명이 중앙청 앞거리로 몰려들면서 세종로 일대는 무질서에 빠졌으며, 군경 차량을 탈취한 일부 시위대는 차를 몰고 세종로 거리를 내달렸는데, 이들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오 2시 30분경 고려대, 동국대, 성균관대, 서울대 등 3,000여 명이 국회의사당 앞에 집결, “박정권 하야”를 외친 후 중앙청 쪽으로 달려가 경찰과 충돌했다. 시위대의 뒤에는 많은 시민들이 따랐다. 시위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서울대 농대 3일, 가장 먼저 시위를 시작한 서울대 수원 농대생 600여 명은 아침 6시에 발대식을 가진 후, 7시 40분경 170리 길을 도보로 행군하여 서울 시위대에 합류했다. 이 도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