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최상림

  • 공유하기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최상림
면담자
정호기
구술일자
2024-07-31
구술장소
서울 마포구 홍대명상센터
구술시간
03:17:44

구술컬렉션 > 1970년대 민주화운동 > 유신 후기와 80년대 전반기 지역 민주화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57 경상북도 대구시 출생
1964.3.-1976.2. 경북대학교 부속초등학교, 제일여자중학교, 경북고등학교 졸업
1976.3.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 입학
1977 경북대학교 학생동아리 ‘복현독서회’ 참여
1978-1980 ‘메아리야학’ 교사로 참여
1979 초. 경북대학교 단과대별 여학생 모임(‘새밭’) 조직
1978.11.7.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흉상 앞 시위(2차 민주구국선언 대투쟁) 참여
1980.2. 경북대학교 졸업
1980 전반기 대구시 섬유회사에 취업
1980 하반기 상경
1981 상반기 서울대학교 교육대학원 중퇴
1981 하반기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참여
1983 경기도 인천시로 이주해 인천도시산업선교회에 참여, 노동운동 지원
1990 인천여성노동자회 참여
1992.7.12.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 창립에 참여. 이후 부대표, 대표 역임
1994-1999 인천여성노동자회 회장
1999.2.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 부대표
1999. 8. 29. 전국여성노동조합 창립. 초대 위원장
2005.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 대표
2005. 5. 지속가능한발전위원회 전문위원회 위원
2009. 한국여성노동자회 자문위원

구술내용 요약
최상림은 1957년 9월(양력)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에서 출생했다. 1976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에 진학했다. 1977년 학보사에 글을 쓴 것이 선배들로부터 주목받았다. 1977년 겨울, 선배들로부터 제안을 받고 MT에 참여해 학습하면서 학생운동에 참여하기로 결심한다. 경북대학교 복현독서회 모임과 노동야학인 메아리야학을 하면서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학생들과도 교류한다. 1978년 11월 7일, 경북대학교 제2차 구국선언문투쟁의 연락책으로 활동했고 시위에 참여해 연행됐지만, 조직적으로 연루되지 않아 처벌이나 학사징계를 받지는 않았다. 이후 여학생의 참여와 저변을 넓히고자 ‘새밭’을 결성하고, 여성학 공부를 시작했다. 1979년 4학년 2학기에는 졸업을 앞둔 시기라 학생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 졸업하고 노동운동 투신하기로 결심한다.
1980년 2월 졸업하고 대구시에 소재한 섬유공장에 취업했다. 하지만, 노동 현장 적응이 힘들고 조직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아 활동하기 어려웠다. 1981년 서울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상경했다. 서울대학교에서 야학팀과 연계되고, 도시산업선교회 목사님을 만나면서 노동운동에 합류한다. 1983년에 결혼해서 인천시로 이주했고, 이후 인천도시산업선교회에서 노동 현장에 투신하려는 학생들이나 노동자 소모임을 지원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1987년 6‧10민주항쟁 이후에는 민주노조운동 지원 공동실천위원회와 한국노동운동연구소에서 활동했다. 1989년부터 인천여성노동자회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으며, 여성노동자의 교육과 소모임 활동, 현장 지원활동 등을 전개했다. 1990년대 인천여성노동자회 회장, 한국여성노동자회 부대표, 전국여성노동조합 창립 및 초대 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여성노동자의 노동환경과 권익 보호를 위해 활동했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1980년대 후반 인천도시산업선교회 활동과 인천여성노동자회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