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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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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김재수
면담자
정호기
구술일자
2024.7.11.
구술장소
(주)우진교통 사무실
구술시간
3시간 42분 40초

구술컬렉션 > 1970년대 민주화운동 > 유신 후기와 80년대 전반기 지역 민주화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60. 충청북도 청원군 출생

1978.  3. 충북대학교 경영학과 입학

1978. 여름 청주지역 대학생 연합 독서모임 참가

1978.  8. 기장청년회 전주대회 참여했다가 연행. 청주경찰서로 이첩되어 석방

1978. - 1980. 심지자활학교 교사

1979.  3. 충북대 국제문화연구회 창립에 참여, 활동

1980. 충북대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 결성, 활동. 지명수배. 6. 30. 구속

1981. 1.말 선고유예 석방

1981.5.-1983.12 군 복무(육군 7사단, 강제징집, 녹화사업)

1985.  3. 29.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창립에 참여. 중앙위원, 지역정책협의회 상임위원

1985.  4. 15. 충북민주화운동협의회 출범. 사무국장

1985. 12. 충북고문폭력용공조작저지대책위원회 실무 책임

1984.3.-1986.2. 충북대학교 재입학, 졸업

1986.  3. 27. 충북민주헌법쟁취위원회 결성에 참여. 수배

1986.  3. 30. 대화운수 김태웅 동지 분신대책위원회 실무 책임

1986.  5. 구속. 2년형 선고

1987.  7.  9. 가석방

1988.  4. 26.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 민중의당 후보로 출마

1989.  3. 19. 충북민족민주운동연합 결성에 참여. 정책실장

1990.  4. 15. 민자당 일당독재 분쇄와 민중기본권 쟁취 국민연합 충북본부 사무처장

1992. 12. 청주 노동자의 집 상담소 대표

1992. 청주지역택시노동자회 결성

1995. 충북노조 대표자회의 집행위원장

1996. 민주노총 충북본부 사무처장

2005. 2. 17.-현재 우진교통 대표이사

구술내용 요약

김재수는 1960년 충청북도 청원군에서 출생하여 청주시에서 성장했다. 일제강점기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일본으로 징용되었다. 광복 후, 아버지는 귀국했으나, 큰아버지는 일본에 있었다. 아버지가 청주지방법원 공무원으로 근무한 것으로 보면, 큰아버지의 미입국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나, 김재수가 민주화운동으로 연행되어 조사받을 때는 문제가 되었다. 청주제일교회 바로 옆에서 거주한 인연으로 일찍이 신자가 되었고, 학생반 활동을 했다. 1978년 충북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했고, 얼마 후 기독청년회에서 활동하던 청주제일교회 박종희 선배로부터 사회과학 서적과 학습을 제안받아 활동했다. 그해 여름에는 청주고 출신 선배들의 주선으로 서울대, 고려대, 충북대 동기들이 모여 연합 독서 모임을 진행했다. 1978년 8월, 박종희의 주선으로 기독교장로회 청년회 전주대회에 참가했다가 시위에 참여했다. 현장에서 연행되어 청주로 이송되어 조사받고 석방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학생운동에 참여한다. 1978년 2학기부터 서울대 이대현 선배와 연결돼서 학습과 서울지역 학생운동 활동가들과 지도 라인을 형성하고, 1979년 3월 경영학과, 사회학과를 중심으로 국제문화연구회를 창립했다.

1980년 초부터 국제문화연구회와 미래문제연구회 중심으로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학생 자치 조직을 새롭게 조직하고자 노력한다. 1980년 4월 충북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운동권이 지지한 인물이 낙선한다. 따라서 청주제일교회와 국제문화연구회, 미래문제연구회 구성원들을 중심으로 민주화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5월 15일에 청주 상당공원까지 대규모 인원이 진출하는 시위를 벌였는데, 청주에서 유래가 없던 일이었다. 곧바로 수배령이 내려져서 여러 지역으로 도피하다가, 6월경 청주경찰서에 자수해 구속되었다. 청주 보안대에서 구타와 고문을 동반한 조사를 받고 대전교도소에 수감되었다.

1981년 1월 영등포구치소에서 선고유예로 출소했고, 그해 5월 강제징집 되었으며, 녹화사업을 받았다. 1983년 12월 전역하고, 1984년 3월 복학해 충북대학교 학생운동 조직 재건을 위해 노력했다. 이를 위해 언더 조직에서 활동했으며, 노동운동을 결심하고 준비했다. 1985년 충북민주화운동협의회(충북민협) 결성에 참여했고, 이후 사무국장을 맡아 활동했다. 충북민협은 충북지역 운동의 구심점으로서 역할을 했으며, 4‧27 ‘군사독재 타도 및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충북도민실천대회’를 역대 최대 규모로 치렀다. 4‧27시위와 5‧3인천민중항쟁에 참여한 것을 이유로 체포되었고, 청주교도소와 춘천교도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87년 7월 9일 출소 이후에는 대전에서 노동 현장에 투신을 준비했다. 1988년 민중의당 후보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며, 선거 이후에는 연합단체에서 활동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것을 보고는 노동운동에 투신해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우진교통 정상화에 참여해 현재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1985년 충북지역 민주화운동의 흐름, 성격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