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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균식
사업개요
- 유신 후기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 2023년 수행된 ‘유신 후반기 민주화운동 역사정리사업’ 구술 채록은 지역 차원의 활동에 집중했다. 전문가 자문과 지역별 의견 수렴을 거쳐 강원, 대구·경북, 대전·충남, 전북, 충북을 공간적 범위로 설정했으며, 1970년대를 중심으로 전후의 주요 사건과 활동을 포괄해 운동의 연속성을 확보했다. 이번 채록은 상대적으로 사료가 부족한 지역 민주화운동을 조명해 기록의 공백을 채우고, 운동사의 전반적인 복원과 정리에 기여하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유신 후반기의 특수성을 규명함으로써 1980년 ‘민주화의 봄’을 거쳐 1980년대 초반으로 이행하는 전환기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실증하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김균식
- 면담자
- 정호기, 양라윤
- 구술일자
- 2023.7.4.
- 구술장소
-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상강원지부 사무실
- 구술시간
- 3시간 27분 58초
구술컬렉션 > 1970년대 민주화운동 > 유신 후기와 80년대 전반기 지역 민주화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58 대구시 남산동 출생
1977 계명대학교 상경 계열 입학
1978 정통문화연구회 결성
대구양서이용협동조합 창립 참여
1979 계명대 학내 시위 주도(유인물 배포 등, 전국 지명 수배)
1980 복학생 준비모임, 학원민주화를 위한 모임 활동
1980.5.14 연행(제50사단 이첩, 70여 일 헌병대, 보안사 구금)
2년 선고(포고령 위반, 소요죄)
1984.8.15 사면 복권
1985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경북지부 결성 참여
1986 민통련 경북지부 주최 “직선제 개헌 쟁취투쟁” 시위(수배)
1987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대구경북본부 결성(사무국, 편집위원장)
1987.7.27 집시법 위반(기소유예)
- 구술내용 요약
-
김균식은 1958년 대구시에서 출생하고 성장했다. 가족 중에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인물이 여럿이었다. 1977년 계명대에 입학해서 경북대 민주화운동으로 제적되고 계명대에 새로 입학한 박명규를 만난다. 계명대는 1975년 홍정회 사건이 있기는 했으나, 1970년대 중반에 두드러진 활동은 나타나지 않았다. 계명대 민주화운동은 고등학교 인맥 중심으로 연결되는 현상을 보였다. 민청학련과 인혁당재건위원회 사건의 여파도 상당했다. KSCF는 학생운동 조직과는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있었으나, 지지하고 후원하는 관계였다. 계명대 민주화운동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것은 1978년 11월 결성된 대구양서이용협동조합이었다. 이를 매개로 대구․경북의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이 연결되었고, 서울과 교류가 이루어졌다. 1979년 9월 4일 대구의 3개 대학(경북대, 계명대, 영남대) 연합시위가 준비되었으나, 계명대만 성사되었다. 이 일로 수배 상태에 놓여 부산, 울산, 원주 등으로 도피하다가 민주화의 봄 국면을 맞았다. 남민전과는 관련이 없었다. 계명대에 복학하고 학원민주화운동 등에 참여했다. 특히 5월 14일 가두시위가 크게 전개되었고 대거 검거되었다. 김균식도 당일 연행되어 남부경찰서를 걸쳐 50사단 헌병대에 수감되었다. 소요죄가 적용되어 유죄판결이 내려졌고, 1982년 8월 15일 석방되었다. 1983년부터 서울에서 노동운동을 준비하다가 1984년 임진호의 권유로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낙향했다. 1985년 결성된 경북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의 사회부장으로 참여했다. 이후 1980년대 대구지역 민주화운동에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하고 역할을 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1979년 유신 말기 상황과 9월 4일 대학 연합시위 구성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