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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교진

구술자소개

구술자
최교진
면담자
정호기, 양라윤
구술일자
2023.7.7.
장소
세종특별자치시 교육청
구술시간
2시간 34분 42초
구술아카이브 > 1970년대 민주화운동 > 유신 후기 지역 민주화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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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내용 요약

최교진은 1953년 11월 충남 보령군에서 출생하고, 대천면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상경해 경동중고등학교에 재학했다. 이 무렵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1972년 학비가 면제되는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입학했다. 당시 공주사범대학의 민주화운동은 거의 표출되지 않았다. 최교진은 ‘수요문학회’에 가입해 활동했고, 이 인맥을 기반으로 1973년 극단 ‘상황’을 창립했다. ‘상황’은 매년 1〜2회 공연했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 1974년 11월 22일부터 3일간 미국 대통령 방한 반대 점거 농성을 벌였다. 최교진은 이 일로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1975년 5월 28일 ‘수요문학회’ 주관으로 ‘5월 문학의 밤’이 개최되었다. 이때 최교진의 발언이 문제시되어 제적되었고,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류 29일을 처분받았다. 곧이어 7월 4일 강제 징집되었고, ‘수요문학회’와 극단 ‘상황’은 해체되었다. 1978년 2월 군 복무를 마치고, 태안군 안면도 소재 재건학교 누동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79년부터 대전의 충남학원 강사로 근무했는데, 지역 민주화운동 관련자들과 교류했다. 민주화의 봄 국면에는 5월 24일 공주경찰서로 연행되었고, 순화교육 대상자로 분류되어 32사단에서 4주간 훈련을 받았다. 1981년 2월 공주사범대를 졸업하고, 3월 대전여자중학교에 부임한다. 당국은 교외 활동을 문제 삼았고, 1984년 9월 말 해직되었다. 이후 충남민주청년연합에 참여하는 등 지역에서 민주화운동을 전개했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으로 해직과 복직을 반복했다.


- 출생과 성장, 충남 대천에서 초등학교 졸업, 상경하여 경동중‧고등학교 졸업

-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 공주사범대 진학

- 1970년대 초반, 공주사범대의 분위기

- 공주사범대에서 동아리 활동, 민주화운동과 학내 시위

- 1974년 11월 22일 학내 시위로 무기정학 처분, 1975년 5월 28일 ‘문학의 밤’ 사건으로 제적, 구류 처분, 강제징집

- 1978년 2월 전역, 안면도 재건학교 누동학원에서 교사, 결혼의 배경

- 1979년 대전 소재 학원 강사, 충남의 민주화운동가들과 조우

-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 국면의 공주사범대 학생운동

- 여동생과 금강회 사건

- 1980년 민주화의 봄 국면에 연행, 보안사 조사, 순화 교육

- 공주사범대 졸업과 교사 발령, 의원면직으로 해직

- 1980년대 중반 대전에서 민주화운동

구술상세목록 및 녹취문

  • 2023_유신 후반기 민주화운동_구술자료 상세목록_최교진.pdf 114561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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