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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영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정희영
- 면담자
- 정호기
- 구술일자
- 2024.7.18.
- 구술장소
- 경북 구술자 자택
- 구술시간
- 3시간 17분 44초
구술컬렉션 > 1970년대 민주화운동 > 유신 후기와 80년대 전반기 지역 민주화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정희영은 1961년 대전시에서 출생했다. 1979년 충남대학교 인문대학에 진학했고, 대전YWCA의 야학 강사 모집 공고를 우연히 보게 되어 지원했다. 여기에서 충남대학교 선배인 송인용을 만났고, 야학 강사들의 학습에 참여했다. 소모임을 통해 의식화 과정을 거치면서 선배 그룹들과 연계되었으나, 학습 소모임을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시위를 주도하거나 공개 활동을 하기보다 조직하고 학습을 심화하는 활동에 주력했다. 1980년 5월 ‘민주화의 봄’ 국면에도 별도로 동향을 파악하고 조직화하는 일을 했다. 1980년 2학기부터는 경제학회, 역사학회, 여성학회 등 오픈 학회가 조직될 때, 이들을 도와 언더에서 학습했다. 1981년 9월 12일 일명 ‘청람회’ 사건으로 연행되었다. 안기부 대공분실에서 40여 일간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했다. 허위자백과 조작된 사건으로 인해 대전교도소에 수감되었고, 12월 15일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석방 이후에도 경찰 당국으로부터 지속적인 감시와 조사를 받았고, 녹화사업 활동을 제안받는 등 괴롭힘을 겪었다.
1984년에 졸업하고, 노동 현장으로 가고 싶었으나, 체력이 감당하지 않아서 노동야학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후배들과 소모임을 결성하고, 교재를 준비해서 풍안방직 인근 소망감리교회에서 늘푸른야학을 열었다. 1985년에는 대화동 공단에서 새롭게 대화노동야학을 시작했다. 노동야학은 오랜 시간 신뢰를 쌓으며 활동한 결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 1986년 대화공단 근처에 대화노동상담소를 개설하고, 노동자들의 민주노조 건설 지원, 해고 투쟁 지원 등 노동자의 권리와 권익을 신장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던 중 1986년 4월 19일에 개최된 신민당 개헌추진위원회 충남도지부 결성대회 및 현판식 사건으로 구속되었고, 신축한 대전교도소에 감금되었다가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1989년에 결혼하고, 1990년 출산하면서 민주화운동과 거리를 둔다.
- 구술내용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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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과 가정환경
- 1979년 충남대 입학과 야학에서 학생운동에 입문
- 야학과 소모임 학습활동
- 언더서클과 오픈 학회 활동
- 여성 소모임 활동과 1979년 시국선언문낭독사건
- 언더에서 조직화 활동에 주력
- 송인용의 영향과 소모임 학습활동
- 1980년 2학기 언더 소모임 확대와 오픈 학회 조직
- 안기부 대공분실에서 조사와 고문, 허위자백 강요와 사건 조작
- 대전교도소 생활과 기소유예 처분으로 석방
- 고문 후유증과 위축된 조직 분위기, 지속적인 감시와 회유
- 1984년 졸업 이후
- 여성운동과 노동운동
- 노동야학 활동과 강사 소모임 조직
- 대화공단에서 대화노동야학 활동
- 대화노동상담소 개소 및 활동 성과
- 1986년 신민당 현판식 시위로 구속
- 1989년 결혼, 결혼생활과 경제문제
- 현재 생활과 삶에 대한 소회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1980년대 초반 충남지역 늘푸른야학 활동과 대화노동상담소 준비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