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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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신학교 문제]
등록번호 : 00988372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조선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의 갈등으로 인해 대한예수교장로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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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스크랩]길을 찾아서-떠돌이 목자의 노래 3-1-
등록번호 : 00952590
날짜 : 2008.08.04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목사가 조선신학교에 편입하여 공부한 경험 만우 송창근의 삶에 대해 적은 신문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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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스크랩]길을 찾아서-떠돌이 목자의 노래 3-2-
등록번호 : 00952591
날짜 : 2008.08.0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다녔던 조선신학교의 일제강점기 일화 및 신학생들이 김재준과 서고도를 이단자로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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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의 생애를 바꾼 세 친구
요약설명 : 동주야! 너희들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 낼게.’ 하고, 문익환은 굳은 다짐을 했다. 훗날 미국 프린스턴신학교를 졸업한 뒤 목사가 된 문익환은 히브리어에 능통한 구약의 권위자로 인정받았다. 그는 성서 공동번역의 책임자인 ‘대한성서공회 신구약 공동번역위원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시의 샘물이 흐르고 있었다. 공동성서 번역을 하는 틈틈이 시를 쓰던 그는 늦봄이라는 호를 지어 첫 시집 『새삼스런 하루』(1973년)를 펴낸 이후 『꿈을 비는 마음』(1978년) 등의 시집을 냈다. 벗들에 대한 다짐으로 늦깎이 시인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장준하 절친한 친구의 세 번째 비보가 전해진 것은 1975년 8월 17일, 문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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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나 있는 사람, 이우정
요약설명 : 사감으로 그야말로 조용하게 살았다. 그는 신학생 시절에도 유난히 말이 없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조선신학교(한국신학대학의 옛 이름) 시절, 여학생은 단 둘 뿐이었는데, 시각장애인이었던 양정신의 손을 잡고 함께 다니는 이우정을 두고 신학대학 동창들은 시각장애인과 농아장애인이 함께 다닌다고 생각했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1970년 해직 교수가 아닌 사직 교수가 된 내력을 보면 그의 품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한신대 학내 분규로 모든 교수가 사직서를 낼 때, 이미 다른 일로 ‘찍혀서’ 사직서를 내기 곤란하다는 한 교수를 이우정이 설득했다. 이후 분규가 해결되어 다들 사직서가 반려되었으나 그 ‘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