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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陳水扁 총통 취임 이후 양안관계와 한반도
등록번호 : 00387171
날짜 : 2000.05.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요약설명 : 총통선거 과정과 겨로가/ 천수이볜 정부의 대중정책 전망/ 중국의 반응과 양안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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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Report 제4호
등록번호 : 00415908
날짜 : 2000.03.0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현대그룹노동조합협의회...
요약설명 : 총통선거 결과와 향후 양안관계 전망/ 유가상승과 인도네시아 경제/ 유로화 출범후 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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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종 제17호
등록번호 : 00841688
날짜 : 1971.05.18
구분 : 문서류 > 정간물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유교수 귀국시키라-서울법대학생총회 자유의 종소리-총통제 음모를 분쇄하자 등
사진사료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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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중국 장개석 총통과 악수하는 이승만 대통령
등록번호 : 00718803
날짜 : 1953.12.2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장개석 총통 부처의 환송을 받으며 대만 송산비행장을 출발, 3일간의 중국 방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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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을 사열하는 장경국 대만총통
등록번호 : 00717289
날짜 : 1969.03.08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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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을 예방한 장경국 대만총통
등록번호 : 00717290
날짜 : 1969.03.08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사료 콘텐츠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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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헌법 - 헌정 질서를 파괴한 종신 총통시대의 개막
요약설명 : 뒤 장기집권의 포석을 깔았다. 종신 총통에 오른 그는 맨 먼저 긴급조치를 선포했다. 유신을 반대하는 사람은 누구든 그 자리에서 감옥에 보낸다는 엄포였다. 그 바람에 한반도의 모든 것들은 숨을 죽였다. 여기, 1970년대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하나의 장면이 있다. 1974년 4월 5일, 박정희는 군포 야산에서 식목일을 기념해 오동나무를 심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청학련 대학생 놈들은 보고를 들어보니 순 빨갱이들이야. 잡히기만 하면 모두 총살이야.” 박정희의 코앞에 있던 경기도지사와 각 신문사 기자들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 청와대 대변인은 박정희의 발언에 대해 “없었던 얘기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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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나면 누구고 나와서 꺼야한다.‘민주수호국민협의회’와 법정스님
요약설명 : ‘64인 지식인선언’을 발표하였다. 선언문에서 총통제 분쇄, 학원탄압 중지, 구속학생 석방, 대학생 강제 입영 중단, 대학점령 군인 철수 등을 촉구했다. 리영희 선생 역시 이 선언문에 참여했다가 신문사에서 해직되었다. 국민들의 저항과 민주 진영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군사정권은 그들의 계획을 착착 차질없이 진행하고 있었고, 드디어 다음 해 10월, 김대중 후보가 대선 중에 공언했던 대로, 그리고 ‘64인 선언문’과 장준하 선생이 《씨알의 소리》 편집회의에서 예언했던 대로 박정희의 종신제 집권을 위한 이른바 ‘10월유신’을 선포하였다. 총통제란 말만 빠져있을 뿐이었다. ‘민주수호국민협의회’는 유신시대를 맞아 197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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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민주구국선언-유신반대운동의 불꽃
요약설명 : 발령된 뒤, 종신 총통으로 군림해가는 박정희의 1인 독재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용납이 되지 않았다. 1975년 선포된 긴급조치 9호는 유신헌법에 대한 일체의 논의를 금지했다. 집회와 시위, 정치 참여 또한 불가능했다. 조국은 겨울공화국이 되고 말았다. 1975년 8월 17일, 절친한 벗 장준하가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장준하는 박정희 정권과 온 몸으로 맞서 싸운 민주 투사였다. 박정희의 미움을 받았던 그의 죽음은 문익환 목사를 분노로 전율케 했다. 그는 오랜 묵상과 기도 끝에 박 정권과 맞서는 것이 의로운 싸움, 거룩한 항쟁임을 확신했다. 1976년 1월 23일, 가톨릭 원주교구에서 ‘원주선언’이 발표될 때...
구술 컬렉션 1건
더 보기일지사료 1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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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중국의 장개석 총통, “한국소동은 공산분자가 고취”
일자 : 1960.4.22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국제관계 및 해외보도
요약설명 : 타이페이 22일발 UPI통신에 의하면 자유중국의 장개석총통은 21일 오하이오주에서 발간되는『타임즈 리더』의 발행인 알버트 V. 딕슨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소동을 고취하는데 공산주의자들이 이바지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장 총통은 “이번 서울의 반정부시위 발생 자체는 공산주의와 관계없는 국내 정치문제의 결과로 일어난 것”이라고 말하였다.『조선일보』1960. 4. 23 조1면 ;『동아일보』1960. 4. 23 석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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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후보, 예비군 폐지 공약 발표
일자 : 1971.1.23
분류 : 분류없음 > 재야·야당·지식인·종교인
요약설명 : 신민당의 김대중 대통령후보는 안국동 신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부정부패 등과 관련하여 박정희의 기자회견에 나온 몇 가지 사항을 비판한 후 소련 등 동구권과의 교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예비군의 완전 폐지와 영구집권을 위한 총통체제 분쇄, 농업혁명 등과 같은 제반의 공약들을 내세웠다.『경향신문』 1971.1.23. 1면; 『동아일보』 1971.1.23. 1면; 『매일신문』 1971.1.2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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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김대중 후보의 발언에 반박
일자 : 1971.1.23
분류 : 분류없음 > 정부·여당
요약설명 : 공화당은 김대중신민당 대통령후보의 정부 비난이나 정책 발표는 상투적인 선전에 불과하다고 반박하였다. 그리고 김대중 후보의 동구권과의 교역 발언은 시국을 망각한 위험하고 무책임한 사고방식이라고 비난하였다. 뿐만 아니라 총통제 운운은 민족 지도자를 모함하고 국민들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밝혔다.『경향신문』 1971.1.22. 1면; 『동아일보』 1971.1.23.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