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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문리대생 40여 명, 단식농성 3일째
일자 : 1964.6.1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학생회 주최의 ‘자유쟁취궐기대회’가 단식농성으로 연결된 것도 김영일이 손정박과 함께 김덕룡을 만나 공조문제를 구체화시켰기 때문이다. 처음 20여 명의 학생으로 시작한 단식농성은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학생들과 여학생들, 상대와 의대, ROTC까지 합류하면서 6월 2일에는 200여 명으로 늘었다. 단식장의 상황은 교내방송뿐만 아니라 동아방송의 ‘앵무새’프로 등 대중전파 및 일간지를 통해서 매일 보도되었다. 1964년 한일회담반대투쟁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단식농성, 투쟁가,화형식, 마당극 등의 운동문화는 한일협정반대투쟁의 대중화와 고양에 일조하였고, 이후 한국 민주화운동 속에 확산되어 뿌리를 내렸다.(6·3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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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문리대생, ‘황소제국 화형식’ 후 ‘제3선언문’ 발표
일자 : 1969.7.2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열고 ‘독재체제를 획책하는 황소제국 화형식’을 가진 뒤 “3선개헌추진세력과 어떤 피의 투쟁도 두려워 하지 않겠다”라는 의지를 표명한 ‘제3선언문’을 발표했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한국민주화운동사 1』, 돌베개, 2008, 527쪽서울대 문리대 제3선언문위정자들은 조국 근대화의 미명 하에 다시금 독재 근성의 독아를 드러내어 전 민족을 압제, 분열의 심연으로 실추시키려 하고 있다. 우리는 저들에게 민족적 양심과 각성을 촉구하고자 다시 이 자리에 모였다. 인류 역사의 발전과정은 정의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피의 투쟁의 역사였다. 민족의 정의와 자유를 위해 바친 선조들의 피와 얼을 우리는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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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생, 3선개헌반대성토대회 및 ‘황소파시즘’ 화형식
일자 : 1969.8.26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황소파시즘’ 화형식을 갖고 세 차례에 걸쳐 교문을 뛰쳐나와 데모를 벌였다. 이날 성토대회에서 학생들은 “3선개헌 기도는 제2의 쿠데타”라고 주장, “조국이 다시 시행착오의 오류를 범하는 비극을 초래치 않게 투쟁 대열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선언문을 채택했다. 이어 학생들은 학교당국에 보내는 메시지와 ‘3선개헌반대학생 처벌 철회’ 등 4개 항목의 결의문을 채택하고 ‘황소파시즘’이라고 쓴 허수아비를 박수갈채 속에 불태우는 화형식을 가졌다. 이어 학생들은 12시 반, 1시 20분 등 세 차례에 걸쳐 교문 앞 150m까지 진출, 경찰과 대치했으나 학생들은 경찰에 쫓겨 되돌아갔다. 이날 경찰은 최루탄 10여 발을 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