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1건
더 보기구술 컬렉션 3건
더 보기-
박인배
면담자 : 오세제
일자/장소: 2007. 12. 3./안성시 남사당전수관
요약설명 : 총무부장, 75년 데모 준비상황, 서울대·경희대 연합시위 준비 과정, 검거와 조사 ...
-
박석운
면담자 : 오세제
일자/장소: 2008. 10. 22.(1차), 10. 26.(2차)/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흥사단
요약설명 : 73년 데모와 김병곤의 연합시위 계획 그리고 유인물 공장, 민청학련 사건 후 2학년 때...
-
유영래
면담자 :
일자/장소: 2007. 10. 1./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72년 유신 초기상황, NH회 간첩단사건과 이후 고려대 상황, 야생화지 사건,...
일지사료 4건
더 보기-
동숭동 서울대학교 학생들 시위 돌입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데모가 이적(利敵)이냐 폭정이 이적이다”, “이 놈 저 놈 다 글렀다 국민은 통곡한다”, “학원자유 보장하여 애국애족 선봉되자”, “민주 위한 학생 데모 총칼로써 막지 말라”라고 외치며 교문을 나섰다.『대학신문』1960. 5. 2 3면 ; 현역일선기자동인 편, 75쪽 ; 안동일·홍기범 공저, 225쪽 ; 조화영 편, 88-90쪽. 당시 서울대학교는 단과대학들이 분산되어 있었는데, 문리대와 음대·미대·법대는 동숭동에, 의대와 약대, 수의대는 문리대 건너편 연건동에, 사대는 을지로6가에, 상대는 안암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화동 입구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경찰관들이 시위대를 저지하면서 쌍방 간에 일대 충돌이 발생해...
-
서울대·고려대·연대생 약 5,000명, 대일 굴욕외교에 반대하며 5·16 이후 최대 규모 ...
일자 : 1964.3.24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대체로 반정부적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도 5·16쿠데타 이전과 차이가 있었다고 지적한다.(서중석, 「1960년 이후 학생운동의 특징과 역사적 공과」, 『역사비평』, 역사비평사, 1997년 겨울호, 28~29쪽) 오후 4시 5분 약 2,300명이 시국강연회가 끝난 후 강당 앞 광장에 집결, 한 학생이 데모하자고 외치자 만장일치로 결의에 찬동하고 시위대중 300여 명이 교문 밖까지 나와 함석헌 옹의 뒤를 따라 스크럼을 짜고 노고산동 로타리까지 진출했으나, 경찰의 제지로 더 못 나가고 “특정재벌을 처단하라”, “평화선을 절대 사수하라”, “나라 팔아먹는 김종필은 자숙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연좌시위를 벌이며 기세를 올렸다. 또 약...
-
서울에 비상계엄선포
일자 : 1964.6.3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정부·여당·군
요약설명 : 과연 계엄령을 선포할 만큼 사태가 악화되었느냐는 의문이다. 한일회담에 대한 반대데모는 65년에 더욱 큰 규모로 더 오랫동안 학생뿐만 아니라 예비역 장성을 포함한 사회각계에서 치열하게 일어났지만 정작 그해에는 계엄령이 선포되지 않았다.(서중석, 「6·3사태: 64년 봄의 한일회담 반대시위」, 『신동아』, 1985년 6월호, 316쪽) 이날 학생데모가 크게 확대되자 하오 2시 30분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긴급국가보안회의에서 비상계엄령을 선포할 것을 만장일치로 합의, 곧이어 하오 5시 중앙청에서 열린 임시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정 총리 이하 전 국무위원들의 부서를 얻어 박 대통령이 하오 8시에 서명함으로써 선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