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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청년당’ 발기에 관한 성명서
일자 : 1960.5.3
분류 : 통일운동과 혁신계활동 > 혁신계활동
요약설명 : 것입니다. 여러분! 2.28 대구 학생데모에서부터 마산 사건을 거쳐 4.19 4.26 의거에 이르는 격동기에 그들 기성 정치인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나이어린 학생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경찰대의 총포에 육박하여 쓰러질 때 잔인무도한 보복과 고문으로 우리 동생들의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질 때 그리고 전 학생들이 공명선거와 자유를 부르짖으며 죽음의 행진을 감행했을 때… 그들 기성정치인들은 낡아 빠진 보신(保身)적 지위를 버리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민주혁명을 위해 무엇을 했길래 지금 젊은이들의 성스러운 피의 대가를 횡취(橫取)하려는 것입니까. 입으로만 반독재 구국투쟁을 부르짖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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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경북고교생, 개헌반대 시위
일자 : 1969.7.9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연일 계속된 대학생들의 개헌반대성토에 이어 9일엔 대구 시내 고등학교 중에서 처음으로 경고(慶高)생 500명이 11시 15분 학기말 시험을 치르고 교문을 뛰쳐나와 개헌반대를 외쳤다. 이들은 11시 30분쯤 2.28기념탑 앞에서 연좌데모를 벌였고 12시 30분쯤 해산했다.『매일신문』 1969.7.1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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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각 학교, 학생시위 막으려 노력
일자 : 1969.7.10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열고 12시 반쯤 가두데모에 나서려 했으나 교사들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경북고교는 학기말시험 세 번째 시간을 마치고 11시 50분부터 10분 간격으로 1학년 3학년 2학년 순서로 교문을 나가게 함으로써 단체행동을 막았다. 대륜고교생 300여 명은 10일 오전 개헌반대성토대회를 가지려다 학교 측의 저지를 받자 50여 명이 북쪽 비상문을 부수고 2.28기념탑 앞까지 데모를 벌였다. 대구고 학생들은 교정에서 개헌반대성토대회를 열려고 했으나 교사들에게 플래카드와 선언문을 빼앗기자 수업을 받는 척하다 학교 담을 넘어 거리로 나가 태극기를 앞세우고 2.28의거기념탑 앞까지 나갔다가 경찰의 저지로 학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