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3·24시위'에 대한 통합 검색 결과 : 전체 2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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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콘텐츠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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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사료 2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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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주의비교연구회 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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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3.10.7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연 1964년 3·24 시위를 주도한 김중태, 현승일, 김도현 등 핵심 멤버들은 이미 1962년 6월 한미행정협정체결촉구시위 당시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이들은 공개 운동조직 대신 세미나, 연구발표회, 연구지 발간 등의 활동을 하는 학술단체로서의 성격을 표방하여, 합법적으로 학생운동의 기반을 확대하고 새 방향을 정립하고자 했다. 예컨대 이종률이 발표한 ‘아시아 아프리카 민족주의의 현실’이라는 연구발표회에서는 군부통치 아래 파시즘적 성향을 띠는 경향을 비판했고, 김경재와 현승일이 발표한 ‘민족의 개념’ 정립에 관한 세미나에서는 남북통일의 주제가 선명히 부각되는 식이었다. 민비연 학생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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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개 정당 및 각 사회단체 참여 ‘대일굴욕외교반대범국민투쟁위’ 결성 한일회담 즉각 중지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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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4.3.9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야당·재야·일반
요약설명 : 긴급 증간호를 기획하고 원고를 마감한 것은 3·24 시위 이전인 3월 12일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기사 중 한일회담에 대해 학계, 언론계, 종교계, 예술계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 36명에게 한일회담에 대한 앙케트를 실시한 것이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한일국교정상화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으나, 굴욕적인 외교자세를 비롯해 그 시기, 조건, 방법 등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한일회담 과정에 국민 여론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강원용 목사, 김옥길 이대총장, 마실언 연세대생, 이극찬 교수, 이상은 교수, 이정규 성대 총장, 한경직 목사, 홍이섭 교수, 황산덕 교수 등), 호혜평등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채 진행되는 회담으로 인해 평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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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고려대·연대생 약 5,000명, 대일 굴욕외교에 반대하며 5·16 이후 최대 규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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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4.3.24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시국강연회를 가졌다.『동아일보』 1964.3.24 석1면·3면, 『경향신문』 1964.3.24 석1면·7면 서중석은 3·24시위의 의의에 대해 설명하면서, “박정권과 학생들의 숙명의 대결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시위”로 그때부터 1990년대까지 계속된 학생운동의 2단계 출발점이라고 평가하였다. 1960년 4·26 이후 5·16쿠데타까지 학생시위는 빈번하였으나, 거의 다 ‘학내분규’라는 말이 의미하듯 학내문제 때문에 일어났으며, 4·19와 비교할 때 3·24는 상당한 시일에 걸쳐 준비된 것으로 여러 대학이 함께 나온 점에서 4·19와 비슷한 점이 있으나 그보다 더 조직적이었고, 3·24 이후의 주요 시위도 갈수록 조직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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