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직업병투쟁'에 대한 통합 검색 결과 : 전체 5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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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사료 5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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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콘텐츠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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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8시간 노동, 화이팅 - 해태제과 8시간 노동제 쟁취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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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죽 타령이야? 김치 좀 썰어 넣고 기름에 지글지글 부쳐 먹자고.” “너, 위장병에, 무좀에 온갖 직업병은 다 갖고 있으면서 그렇게 아무거나 먹어 댈 거야?” “됐어! 기계 청소하느라 손가락 세 개나 잘려먹은 너 보다는 내가 낫지. 내가 만들어 줄게.” “다들 편히 앉아 계셔들. 위장병에, 손가락 병신에 도무지 멀쩡한 인간이 없네. 내가 할게, 내가.” “우하하하! 너 지금 코맹맹이 소리로 뭐라는 거야? 라인 이동 되고나서 밀가루 작업 때문에 대번에 축농증 걸렸다며?” “에그, 다 비켜! 먹고 싶은 자가 만들어 먹을 테니. 도대체가 해태제과 근무 몇 년 만에 환자 아닌 인간이 없네.” 그때 대의원대회가 끝나고 나서 바로 가족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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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일방직사건 - “똥을 먹고 살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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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무좀이었다. 한증막 같은 곳에서 운동화를 신고 하루 열댓 시간씩 일해야 하는 모두의 직업병과도 같았다. 도저히 가려움을 참을 수 없으면 운동화를 벗고 맨발을 시멘트바닥에 북북 문질러댔다. 쾌감과 함께 또 다른 통증이 바늘로 찌르듯 다리를 타고 올라오기 마련이었다. 발가락 피부가 벗겨져 피가 벌겋게 시멘트 바닥에 묻어났다. 가려움은 발만이 아니었다. 땀띠가 등과 목덜미를 넘어 얼굴까지 타고 올라간 사람이 흔했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려고 고향을 떠나 올 때만해도 사회가 이런 곳인 줄은 몰랐을 것이었다. 몇 년째 주말도 휴일도 없이 하루 열댓 시간씩 일한 결과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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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재사망 30주기 컬렉션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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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등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사망자 8명, 장애판정 637명이 발생했다. 김봉환씨는 직업병으로 인정받지 못한채 1991년 사망했고, 같은 해 권경용씨는 방에 연탄불을 피워 자살했다. 1992년 고정자씨는 정밀검진을 받고 결과를 기다리다가 목욕탕 수도꼭지에 스카프를 감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동부는 원진레이온의 위법 사실을 파악, 발표했지만 산업재해로 인정하고 보상하는 것에는 인색했다. 산재 노동자들은 1개월간의 요양치료를 받고 등급에 따라 장애보상금을 받았지만, 이황화탄소 중독이 장기간의 치료를 요한다는 사실은 몰랐다. 이후 병세가 악화되어 재요양신청을 했지만 노동부는 이미 끝난 일이라며 재요양신청을 거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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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사료 1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