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3·15 이후 강원도에서는 처음으로 시위가 발생하였다. 춘천고등학교 학생 500여 명은 3·15 불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를 감행하였다. 학생들은 이날이 개교기념일인데도 학교당국이 기념식을 무기연기하기로 결정하자 오전 10시 시위대열을 편성하여 거리로 뛰어나왔다. 이들은 스크럼을 짜고 “구속된 애국청년 학생을 석방하라”, “악질 고문경관을 살인죄로 처단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수업을 즉시 계속하라”, “학원에 자유를 달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가를 행진하였다. 같은 시간에 춘천여중·고등학생들도 “거짓과 구악(舊惡)을 송두리째 뿌리 뽑아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나왔다. 일시에 1천여 명의 학생시위가 노도와 같이 일어나자 거리는 완전히 시위대의 독무대로 변하였다. 시위대는 소양로4가를 거쳐 중앙시장, 시 교육구청을 지나 강원일보사를 거쳐 중앙로 로터리에서 농성하다가 오전 10시 20분 경 춘천경찰서 앞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도지사·시장·경찰국장·서장을불러오라”, “경찰은 물러가라”고 외쳤다. 그러나 경찰서 정문 앞을 경비하던 수많은 경찰관은 일절 이를 간섭하지 않고 묵묵히 서있기만 하였다.『강원일보』1960. 4. 26 1면 ; 조화영편, 298-303쪽 ; 『동아일보』1960. 4.26 석3면 ;『조선일보』1960. 4. 25 석3면 이들은 11시 15분 경 학도호국단 노래를 부르면서 귀교 도중춘천서에 진입하기도 하였다.
이때 성수중·고등학교 학생 50여 명, 보인기술고등학교 학생 약간 명이 합세하였다. 다소 흥분한 학생들은 경찰 경비차에 투석하였으나 경찰들은 아무런 대항도 하지 않았다. 이어 시위대는 시청으로 발길을 돌렸는데, 춘천여자고등학교 학생 200여 명이 이들과 합세하여 중앙로 로터리를 지나 시내로 들어갔다. 약 700명으로 증원된 시위대는 시민들이 주시하는 가운데 시위를 계속하면서 시청 및 자유당 시당건물에 투석하여 유리창을 파괴하였다.『강원일보』1960. 4. 26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