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평호 버스참사 유족 300여 명 시신 동반 시위, 경찰이 강제 해산
11일 낮 1시 5분경 청평호 버스참사 유족 300여 명은 버스회사 측의 무성의한 태도와 당국의 무대책 등에 반발, “보라 이 비극을”이라고 쓴 혈서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들것과 리어카에 50구의 시체를 싣고 서울을 향해 데모에 나서 이날 밤 안치소에서 20km 떨어진 가평군 외서면 대성리역 부근까지 진출했다가 긴급 출동한 기동경찰 500여 명과 충돌사태까지 빚은 끝에 12일 새벽 3시 반 강제로 해산당했다. 이날 유족들은 아침 7시 사고대책위원회 위원장 이규선 가평군수에게 “시체 부패방지 대책을 세워달라”, “차주와 버스회사 사장을 데려오라”, “내무, 교통 양 장관과의 면담을 주선해달라” 등을 요구했으나 정오까지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자 시체가 안치된 단을 부수고 급히 만든 들것 30여 개와 리어카에 시체를 싣고 나와 서울을 향해 데모에 나섰다.『동아일보』 1971.5.12. 7면; 『경향신문』 1971.5.12. 7면; 『조선일보』 1971.5.12. 7면; 『한국일보』 1971.5.12. 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