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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벗기고 물·전기고문으로 살점 튀어 나오기도” 인혁당 관련자들, 변호인에 고문 사실 밝혀

12일, 세칭 인민혁명당 사건 관련자로 구속 중인 미결수 25명 중 거의 대부분이 수사기관의 예심과정에서 전기, 물, 몽둥이 등으로 심한 고문을 당해 피까지 토한 피의자가 있었다고, 담당 변호인인 박한상 변호사가 밝혔다.
인혁당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수사를 마치고 검찰에 송치, 서울지검 공안부 담당검사들이 기소할 수 없다고 서명을 거부하고 담당검사 중 3명이 사표까지 낸 와중에, 무료변론을 맡고 나선 한국인권옹호협회 회장인 박한상 변호사가 11일 하오부터 서울교도소에서 이들에 대한 조사를 착수, 12일 상오 현재 15명을 조사하고 그중 13명이 고문당했다고 이날 밝힌 사실은 다음과 같다.
▶ 도예종(40) 7월 30일 낮 1시쯤 중앙정보부에서 왔다는 수사원 1명에게 연행되어 촬영실이라는 방 안으로 인도, 옷을 벗긴 다음 다다미 2장 넓이 위에 앉혀 놓고 물을 머리 위로부터 부은 다음 수건과 로프로 결박, 나중엔 옷을 입히고 두꺼운 베 같은 것으로 만든 잠수복 비슷한 것을 덮어씌워 목과 다리만 나오게 했는데 몸을 조금만 밀어붙이면 두 다리는 위로 올라가고 고개를 꼼짝 못하게 결박된다. 수건으로 코 입 얼굴을 씌워 막고 물을 부으면서 엄지발가락에 끼운 전선에 전기를 통했다 끊었다 하는 전기고문을 당했다. 그 후부터 가끔 목에서 피가 나오고 지금도 가끔 졸도하고 심할 땐 10시간 만에 깨어난다.
▶ 정도영(39) 7월 28일 낮 1시쯤 연행된 직후 “왜 가슴이 뛰는가?”라고 묻기에 폐가 나빠서 뛴다고 말했더니, “그러면 고문은 안 되겠는데……”라고 수사원이 말했다. 그러자 침대 위에 눕히고 물과 전기로 고문을 당했다. 정신이 깨어난 뒤에 들었더니 고문할 때 물 다섯 바께쓰나 뒤집어썼었다고 한다. 고문 직후엔 2시간 동안 의식을 잃었다. “고문치사 모르는가?”, “고문까지 했으니 우리 약점을 잡힐 대로 잡혔다.”면서 고문했다. 이튿날엔 별안간 “당신 이름을 모르는가?”라고 하기에 “모른다”고 했더니 “인민혁명당이 아니냐”고 물었다.
▶ 김영한(30) 발가벗긴 다음 “안대면 병신 될 줄 알라”, “성기는 못쓰게 될 줄 알라”고 윽박지르면 서 몽둥이 지팡이로 마구 때렸다.
▶ 도혁택(31) 4·19 후 교원노조에 가담, 그로 인해 5·16 후에 일시 피검되었다가 훈계 방면된 일이 있는데, 이번에는 약 2시간에 걸쳐 전기 등으로 고문당했다.
▶ 전무배(32) “인민혁명당 조직 보따리를 내놔라”라는 등 윽박지르면서 발가벗기고 사지를 묶어 뒤로 눕힌 다음 물고문을 당했다. 고문당한 뒤 기침을 할 때 피가 나왔다.
▶ 김동희(27) 전기고문을 당하고 밧줄로 마구 때렸다.
▶ 박상홍(45) 물을 먹이고 전기고문을 했는데 전기고문을 하니까 오른쪽 종아리살이 툭툭 튀어 나오는데, 어찌 고문이 심했던지 오히려 살이 튀어나오니까 좀 시원했다. 물고문 때 물이 귀에 들어가 지금도 먹먹하다
▶ 임창순(51) 7월 24일 연행, 처음 3일간은 버티어 봤는데 포승으로 때리고 발가벗긴 다음 묶어 놓고 물고문, 지금도 혈액순환이 잘 안돼 고통스럽다. 고문한 사람은 양씨(자기들 끼리 부르는 것으로 보아)로 아는데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한편 이 사실을 밝힌 박한상 한국인권옹호협회 회장은 인민혁명당 사건에 대하여 “협회로서는 린치 사건 조사단을 구성하여 철저히 조사하고 가해자들을 사직당국에 고발하겠다”고 말했다.『동아일보』 1964.9.12 석7면, 『경향신문』 1964.9.12 석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