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오늘 시위주동학생·‘정치교수’ 징계 시한

  • 공유하기
시위주동학생정치교수의 처벌시한인 7일, 고려·연세 두 대학교는 무거운 침묵 속에 마지막 진통을 겪고 있는가 하면, 맹휴를 결의했던 서울 법대와 상대에는 학생들이 등교는 했으나 일부 학생을 제외하고 거의 기말시험을 거부했다.
고려대=휴업령 발효 2일째인 7일 오전, 고려대 캠퍼스는 고요에 잠긴 채 도서관까지 내부 청소 때문에 9일까지 휴관, 학생들을 들이지 않았으며, 강의실도 잠겨 있다. 본관 앞 벤치와 배구장 옆 잔디에 몇몇 학생들이 서성댈 뿐 총장실에서 열리던 교무위원회도 이날은 없었고 교수들의 모습도 눈에 띄지 않았다.
연세대=7일 오전 10시, 연세대는 동교 연합신학대학원 휴게실에서 교무위원회를 열었으나 합동 학사 감사 때문에 11시경 아무 결론 없이 휴회, 감사가 끝나는 이날 오후 3시부터 다시 교무위원회를 열고, 학생과 교수의 처벌여부에 대한 학교 측의 최종 입장을 결정하기로 했다.
서울대 법대=학생총회의 결의에 의해 시험을 보이콧하고 무기한 동맹휴학에 들어간 서울대 법대는 7일 아침 50~60여 명의 학생이 등교, 교정에서 서성거리다가 그중 20여 명이 응시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총회의 결의를 존중하자”고 하며 귀가했다. 한편, 법대 교수들은 10시부터 당면 사태수습을 위해 교수회의를 열었다.
서울대 상대=고려대·연세대 무기휴업령에 동정, 맹휴에 들어간 서울대 상대는 7일 오전 학생 100여 명이 등교해 1학기말 시험을 보이콧한 채 본관 앞 잔디에 둘러앉아 “시험과 수업은 거부하지만 구국등교로서 학교는 나온다.”고 하였다. 한편 졸업반 학생들을 포함한 일부 학생들은 학교 측이 강행하는 시험에 응시했는데, 학교당국은 “이번 기회를 놓이면 1학기말 시험을 볼 수 없으니 공연한 희생을 당하지 말라”는 게시를 현관에 내붙였다. 학장실에서는 사태수습을 위한 교수회가 열렸다.『동아일보』 1965.9.7 석7면, 『경향신문』 1965.9.7 석3면
분류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1965-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