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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투위의 아주 특별한 표창장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긴급조치 하에서 자유언론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유신정권의 광고탄압과 경영진의 굴복으로 채 5개월도 안되어 동아일보에서 134명의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들이 강제해직되었다.
회사에서 폭력배에게 끌려나온 다음날인 1975년 3월 18일, 해직 기자들은 기자협회에 모여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를 결성했다. 동아투위는 이 날부터 9월 17일까지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시간마다 동아일보사 앞에 서서 유인물을 배포하며 자유언론을 위한 투쟁을 계속했다.
1975년 4월 1일 동아일보 창간 55주년에는 회사의 창간 기념행사로 장기 근속자에 대한 시상식이 거행되는 동안, 동아투위는 따로 기념식을 갖고 자유언론을 위한 투쟁을 계속할 것을 다짐했다.
이 기념식과 관련하여 사료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사료 중에는 동아투위 위원이었던 조성숙 님과 박종만 님이 기증해 주신 특별한 표창장 5건이 눈에 띈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명의의 이 표창장에는 날짜가 표기되어 있지 않으나, 그 중 1건인 <팔자기구상>에 연필로 “단기 4308년 4월 1일”이라고 쓰여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망타진상>
귀 부서는 치욕의 3월 17일을 기해 부장 이하 모두가 일심협력 끝에 일망타진되어 동아일보 사옥에서 쫓겨나왔기에 그 똘똘뭉침이 가상하여 이에 표창합니다.
<금단추아차상>
귀하들은 모가지만 성했더라도 창간축회 금단추 및 금반지를 수여 받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광을 자유언론제단에 바쳤기에 이에 표창합니다.
<진수성찬아사직전상>
귀 팀은 동아일보사 2층 암굴에서 만 닷새 동안이나 보리차와 소금을 포식하면서도 서로 잡아먹지 않은 지성이 가상하여 이에 표창합니다.
<팔자기구상>
귀하들은 매년 춘삼월만 되면 실업자가 되어버리는 초악질분자들로서 처자식의 생계를 한오쿰도 고려하지 않는 반가정적 범죄는 준엄하나 그 팔자기구함이 무궁하여 이에 표창합니다.
<아담즈 애플(일명 울대)상>
그대는 소싯적에 하우스보이를 약간 역임했다는 경력 하나로 대변인이라는 막중한 자리를 차지한 뒤 사사건건 핏대를 새우고(세우고) 목의 혹을 불룩거리면서 특히 3월 12일 아침 총회에서 이관선(官選) 주필에게 자유언론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할 것이라는 확신 아래 쫓겨나온 공로가 가상하여 표창합니다. (*이官選 주필은 이동욱 주필을 일컫는 표현이다.)
이후 해직기자들은 줄곧 감시, 연행, 감금, 투옥, 그리고 주기적인 실업과 생활고에 시달리며 자유언론의 제단에 몸을 바쳤고 민주화를 위해 ‘거리의 기자’, '재야의 언론인‘으로 살아왔다.
2008년 10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를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국가와 동아일보가 해직자들에게 사과 및 적절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2016년 4월 29일, 동아투위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동아투위 위원 113명 중 소송을 낸 유족을 포함한 103명 가운데 13명에게 1천만 원의 배상을 하라고 선고했다.
<자유언론실천선언> 발표 당시 30대였던 해직기자는 2016년에 70대가 되었다. 41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