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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로 보는 한일회담반대운동

침략적 왜놈근성 쇠뭉치로 후려쳐라

1964년 3월 24일 서울대 문리대 시위. 문리대 학생들은 '제국주의자 및 민족반역자 화형집행식'을 열어 이완용과 이케다의 허수아비를 불태웠다. 이른바 매국노 화형식이다.  이어 오후 2시경 문리대 학생 약 300명이 ‘사수하자 평화선’, ‘일본제국주의  말살하자’ 등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교문을 박차고 나와 시위에 돌입하였다. 이날 시위가 한일회담반대운동의 출정식인 셈이다.

사수하자! 평화선

1964년 3월 24일 서울대 문리대 시위. 평화선 문제에 대한 반발도 컸다. 이승만대통령은 맥아더라인 폐지를 앞두고 기존의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 1952년 1월 인접해양에 대한 주권에 관한 선언을 발표했다. 이때 그은 선이 평화선으로 불리었다. 평화선은 어민들에게 생존선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은 청구권협상이 잘 되면 평화선을 포기한다는 복안을 일찍부터 내보였다.

이것이 민족적 민주주의이드냐?

1964년 3월 26일 경기고 학생 시위. 한일굴욕 외교 반대 시위가 사흘째 계속되던 날, 박정희 대통령은 “한일회담을 기정의 정부 방침대로 밀고 나가겠다” 특별 담화를 발표했다. 이날 서울, 부산, 광주 등 전국 11개 도시에서 6만여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경기고생들은 화신 앞을 통과하여 의사당 앞에 집결한 다음 정부에 보내는 결의문을 다시 낭독하고, 을지로 입구 쪽으로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행진했다. 학생들은 “국내매국상인을 규탄한다”, “잔악한 일본의 경제침략을 분쇄”, “이것이 민족적 민주주의이드냐”, “쪽발이는 물러나라”, “영토의 한 치도 줄 수 없다” 등의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제2의 한일합방 결사반대

1964년 3월 26일 경기고 학생시위

매국적 회담 즉각 중단하라

1964년 3월 26일 동도공고생 시위. 동도공고 학생 800여 명은 26일 낮 1시쯤 중앙청 앞까지 도착하였으나 2개 중대가량 되는 무장군대와 승강이를 벌였다.  홍성익 군과 문영섭 군이 개머리판에 맞아 입과 코를 다쳐 피를 흘렸다.

민심은 천심이다

1964년 3월 27일 보인상고 학생 시위. 대일굴욕외교를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나흘째 계속되던 이날, 전국 16개 도시의 30여개 대학 및 중고교생들 329,000여 명이 가두시위에 나섰다. "민심은 천심이다"라는 현수막을 든 보인상고 500명은 "한일회담 대표단 즉시 철수하라", "우리 경비정의 쾌속을 바란다", "매판자본 타도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일본의 경제적 침략 분쇄하자/ 자수하라 3粉폭리

1964년 3월 27일 서울대 상대생 1,000여명이 종로를 거쳐 12시 35분 반도호텔 앞에서 “일본 상사 물러가라”고 15분간 시위했다. 이들은 “자수하라 삼분폭리”, “일본의 경제적 침략을 분쇄하자”는 구호를 외쳤다. 반도호텔 앞에서 충무로의 신도호텔 쪽으로 옮긴 시위대는 “미쓰비시 대리점 물러가라”, “듣기 싫다 사요나라, 아리랑을 불러보자”고 외쳤다. 3粉은 설탕, 밀가루, 시멘트를 말한다.  삼성그룹 등 일부 대기업들이 설탕·밀가루·시멘트 등의 값을 올려 폭리를 취해 국민의 공분을 샀다.

그대를 기다렸노라

1964년 3월 28일 한일회담반대 시위 5일 째, 오전 11시쯤 성균관대생 약 4,000여 명은 교내에서 "정부는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하라. 이것이 관철 안 될 때 우리는 죽음으로 투쟁하겠다”는 결의문을 낭독한 후, 태극기를 펼쳐든 4명의 여학생을 앞세우고 교문을 나서 종로4가를 거쳐 시위에 나섰다. “그대를 기다렸노라”, “여야는 자숙하라”, “누구를 위한 회담인가”, “평화선을 고수하자”는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시위를 벌였다.  '그대'는 한일회담을 주도하고 일본에서 귀국한 김종필 공화당의장을 가리킨다.

누구를 위한 회담인가

1964년 3월 28일 성균관대 학생 시위

매국협정 저지시켜 조국수호 이룩하자

1964년 8월 14일, 한일협정비준안이 여당인 공화당의 단독 심의로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6월 22일 조인 이후 54일 만이다.  재석 의원  111명 중 110명 찬성, 기권 1명으로 반대는 한 명도 없었다. 이날 학생, 재야, 야당, 시민사회는 일제히 비준 반대 및 무효 투쟁에 들어갔다. 오후 1시, 조국수호국민협의회가 주최한 비상국민대회가 대성빌딩에서 열렸다. 대회에 변영태, 함석헌, 백기완 등이 연사로 나서 “매국적인 한일협정을 즉각 무효화하라” 할 것을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