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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농성투쟁과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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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10일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은폐규탄 및 호헌철페 6.10국민대회'에 참석했던 학생과 시민들이 명동성당에 들어가 시위를 이어갔다. 참여자수는 점점 늘어나 밤 11시 경에는 1천여 명으로 불어났다. 다음 날 아침 임시지도부는 농성하다 귀가한 학생들이 연행되었다는 소식에 농성을 계속할 것을 결의했다. 서대협(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이 매일 명동 일대에서 명동성당투쟁 지원투쟁을 벌이는 가운데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사원 등 넥타이 부대가 명동 일대를 메우며 지원시위를 했다. 명동 일대의 상인들과 일반 시민 등은 격려금과 속옷  뿐만 아니라 온갖 생필품을 부족함이 없이 제공했다. 명동 일대는 시민의 데모와 토론장이 되었다.  또한 김수환 추기경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경찰이 시위대를 강제연행하려고 하자 몸으로 막았다. 6월 15일 농성은 평화적으로 끝났다. 명동성당 농성투쟁은 6.10민주항쟁을  확대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명동성당 농성투쟁 나흘째 되는 날, 6월 13일 토요일 명동성당 본당에서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결혼식이 시작되자 신랑, 신부와 하객들이 성당으로 들어오면서 하객들도 자연스럽게 집회에 동참했다. 시위대는 박수와 함성으로 신랑, 신부를 축하해 주었다. 이날 명동성당에서 5쌍의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1쌍만 종로성당으로 장소를 옮겨 예식을 치렀고, 나머지 4쌍의 결혼식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이를 계기로 봉쇄되어 있던 성당의 시민 출입이 자유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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