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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장소, 대구지역 6.10민주항쟁

직선제를 쟁취하자! 집회시위 및 언론자유를 보장하라! 살인무기 최루탄을 추방하자!

회사에서, 학교에서, 거리의 곳곳에서... 나이와 종교, 성별을 넘어 6.10민주항쟁에 참여한, 이 땅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17년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다시 한번 거리와 광장으로 모였다. 추위에 떨며 광장에서 촛불을 밝힌 대구시민들은 말한다.

“민주주의 역사 속에 내가 있다.”

<1987-2017 대구 6월의 함성 - 6월항쟁 30년 대구사진전: '민주주의는 계속된다' 중에서>


6.10민주항쟁 30주년을 맞이하여 대구지역에서도 기념 행사가 열렸으며, 대구지역의 민주광장으로 불리는 동성로에는 6.10민주항쟁 표지석이 설치되었다.

6.10민주항쟁 30주년을 맞이하여 대구지역 6.10민주항쟁 사진 속 ‘그때 그장소’의 생동감 넘치는 순간과, 30년이라는 세월이 쌓이고 꺾인 현재 풍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동성로

동성로는 일제강점기 이후 대구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로 중앙파출소에서 대구역네거리에 이르는 1km 가량의 남북으로 이어지는 상점가이다. 대구사람들은 동성로를 중심으로 번화가 일대를 통칭해서 동성로라고 부르곤 한다. 동성로의 중앙지점에는 대구백화점 앞 쪽으로 광장이 펼쳐져 있다. 6.10민주항쟁 당시 이곳에서 많은 집회가 열리면서 시민들은 여기를 민주광장이라고 불렀다. 시민들이 붙인 비공식 명칭이었다. 그 이후, 주요한 정치적 이슈가 발생할 때 시민들은 이곳으로 모여 광장의 직접민주주의를 실험하곤 했다. 한때는 이러한 활동을 저지하기 위한 관광안내소, 분수대 등이 설치되기도 했다. 2010년께는 배전반, 전봇대 등을 없애는 등 가로정비사업이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차없는거리가 조성되면서 민주광장에는 상설야외무대가 설치되었다. 2017년에는 6.10민주항쟁 30주년을 맞이하여 민주광장에 표지석이 세워졌다.

교동시장과 동아백화점

동성로 북편에 인접한 교동시장은 향교가 위치해 교동이라 불렸으나 1932년 일제에 의해 향교가 남산동으로 옮겨지고 이름만 남았다. 한국전쟁 이후 보따리상과 군수품을 기반으로 깡통시장이 형성되었고, 전자상가와 귀금속 업계도 번성했으나 2000년대부터 상권이 약화되었다. 교동시장에 인접한 동아백화점은 대구백화점과 함께 대구를 대표하는 백화점이었다. 6.10민주항쟁 당시에는 상권이 활성화되어 있어 유동인구가 많아 이곳에서 빈번하게 시위가 벌어졌다.

봉산육거리 - 대봉네거리

대구를 동서로 관통하는 달구벌대로의 중앙 정도에 위치하는 곳으로 과거에는 유신학원, 일신학원을 비롯한 대형학원가와 경북대사대부속 초등학교, 경북대사대부속 고등학교가 위치했다.

경북대학교 일청담

경북대학교는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거점 국립대학이다. 인혁당사건에 의해 희생된 열사들 중 몇몇도 이 학교 출신이었다. 6.10민주항쟁을 촉발시키는 집회가 1987년 1월부터 학교 안팎에서 진행되었다. 일청담은 경북대 중심에 위치한 연못으로, 대강당 앞의 민주광장과 함께 교내집회가 자주 일어나는 곳이었다.

약령시

전주, 원주와 함께 조선시대 3대 약령시인 대구 약령시는 현재 약전골목으로 불리고 있다. 근처에 제일교회, 계산성당 등이 위치해 6.10민주항쟁 당시 종교인들이 행동했던 곳이기도 하다.

명덕네거리

2.28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곳으로 6.10민주항쟁 당시 사진을 보면 2.28운동 기념탑이 네거리의 중앙에 우뚝 서있지만 1991년에 두류공원으로 옮겨졌다. 현재 이곳은 대구지하철 2호선과 3호선이 만나는 환승역이 되었다.

* 참고 - 6.10민주항쟁 당시 사진은 사진아카이브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현재 대구 모습은 '대구참여연대'에서 제공한 사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