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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을 위한 교사들의 외침 - 교육민주화선언

1986년 5월 10일 한국YMCA중등교육자협의회(회장 윤영규) 산하 서울, 부산, 광주, 춘천지역협의회 회원 교사 800여 명은 각 지역 YMCA 강당에서  '제1회 교사의 날' 행사를 갖고 <교육민주화선언>을 발표했다. 교사들은 장학사, 교장 그리고 경찰의 봉쇄를 뚫고 선언을 감행했고 477명의 교사는 선언의 취지에 찬성한다는 표시로 연명부에 서명을 했다.

대회장 소묘

[서울]

1986년 5월 10일 오후 3시 30분경부터 서울YMCA 2층 로비에 '제1회 교사의 날' 행사에 참여하는 교사들이 모여들었다. 교사들의 분위기는 긴장된 모습과 결연한 의지가 넘치고 있었다. 왜냐하면 10일 정오를 전후하여 각 학교에 전언통신문을 통하여 'YMCA 회관에서 교사들 집회가 있을 것이니 참가가 예상되는 교사들을 참가하지 못하도록 설득하라'는 내용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일부 학교에서는 퇴근 시간이 되어도 교사들이 퇴근하지 못하도록 잡아두는 경우도 있었고, 노골적으로 교사가 보는 앞에서 집회 초청장을 찢어버리면서 집회에 참가하지 말 것을 명령하는 교장도 있었다. 

행사는 집회 예정시간인 4시보다 약 1시간 늦게 450여 명의 교사가 참석한 가운데 시작되었다. 대회장 중앙에 '교사의 날'이라는 글자가 붙여졌고, 양 옆으로는 민중의 대동(大同)을 나타내는 깃발이 붙여졌다. 2층에서는 '해직교사 복직시켜라', '교육의 정치도구화를 저지하자', '교육의 민주화는 교사의 손으로', '민주·민족교육 만세' 등의 구호가 적힌 9개의 플래카드가 내려 졌다.

오후 5시, 김민곤 교사(서울사대부고)의 개회선언에 이어 이수호 교사(신일고)가 개회사를 했다. 이어서 윤중기 교사(경복고)의 「한국 교육의 현실」이라는 제목의 기념강연이 있었고, 신정식 교사(신일고)가 <교육민주화선언>을 낭독했다. 선언문 낭독이 끝남과 동시에 교사들은 '늙은 교사의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배포된 서명용지에 서명을 했다. 이여옥 교사(봉천중)의 현장사례 발표 후 교육민주화를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고 풍물패가 등장하면서 흥겨운 장단속에 뒷풀이가 시작되었다. 

[춘천]

춘천은 오후 7시 30분에 행사를 하기로 되어있었다. 강원도는 사북이나 황지 등에서 춘천까지 오려면 3~4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비가 오는 가운데 도교육위의 학무과장과 장학사, 경찰 등이 대회장인 춘천YMCA 강당 안팍을 둘러싸고 있어 참석한 교사는 30여 명에 불과했다. 이 인원으로 행사를 진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교사들은 비공개로 행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소양강 주변 산장으로 장소를 옮겼다. 침통한 회장 인사말과 총무의 <교육민주화선언> 낭독이 있었다. 심성보 선생의  「교육현실과 교육의 자율성」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듣는 것으로 행사를 마쳤다.

[광주]

광주는 광주YMCA 2층 백제실에서 광주, 목포, 해남, 순천, 여수, 전주지역 교사 250여 명이 모여 교사의 날 행사를 진행했다. 오후 5시 20분 '선구자'가 합창되면서 행사가 시작되었다. 회장 인사가 끝나고 이오덕 선생의 강연을 들었다. 강연이 끝나고 호남지역협의회 회장 박남 교사(수피아여고)의 선언문 낭독이 있었다. 선언이 낭독되는 동안 서명용지가 돌면서 서명이 시작되었다. 대회장에 '상록수'와 '아침이슬'이 울려퍼지며 서명에 동의하는 교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교육민주화 만세'를 함께 외쳤다.

[부산]

부산은 부산YMCA 강당에서 부산, 대구, 안동, 울산지역 교사 80여 명의 회원이 모여 행사를 했다. 이상석 회장이 교사의 날 취지 설명을 한 후 초청 연사 유상덕 선생의 「바람직한 교사상」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강연을 듣고, 영남지역 회장 김관규 교사의 교육민주화 선언 낭독 및 채택의 시간을 가졌다. 선언문은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또렷하게 낭독이 되었고, 낭독이 끝나자 참석자 전원은 박수를 쳤다.  부산은 서명 대신 박수로 선언문을 채택했다. 

교육민주화선언

김민곤 교사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교육민주화선언은 교육의 민주화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천명했다. 

1.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교육은 정치에 엄정한 중립을 지켜 파당적 이해에 악용되어서는 안된다. 
1. 교사의 교육권과 제반 시민적 권리는 침해되어서는 안되며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권도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1. 교육행정의 비민주성, 관료성이 배제되고 교육의 자율성이 확립되기 위해 교육자치제는 조속히 실현되어야 한다.
1. 자주적인 교원단체의 설립과 활동의 자유는 전면 보장되어야 하며, 이에 대한 당국의 부당한 간섭과 탄압은 배제되어야 한다.
1. 정상적 교육활동을 저해하는 온갖 비교육적 잡무는 제거되어야 한며, 교육의 파행성을 심화시키는 강요된 보충수업과 비인간화를 조장하는 심야학습은 즉각 철폐되어야 한다. 

교육민주화선언과 관련하여 문교부는 관련 교사들에 대해 직위해제, 감봉, 경고, 견책 등의 징계조치를 내리고 교사들은 이에 맞서 징계철회투쟁을 벌였다. 

서울시교육위가 이수호 교사에게 사직을 종용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수호 교사가 소속된 신일고에서는 5월 15일 오전 3학년 학생 400여 명이 교내 운동장에서 이수호 교사에 대한 사표종용에 항의하는 연좌농성을 벌였고, 신일고 전체 교사 55명은 이수호 교사에 대한 사표종용을 중대한 교권침해로 보고 대책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의 응원이 이어졌다

신민당은 선언 교사에 대한 문교부의 징계방침의 즉각적인 철회를 요구했다.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은 선언 교사들에 대한 징계를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여성의 전화, 여성사회연구회, 주부아카데미연합회, 한국교회여성연합회 등 4개 여성단체는 '교육민주화를 위한 우리의 제언'이란 성명을 내고 선언 교사에 대한 징계철회와 교사들의 자주적인 활동 보장 등을 요구했다.

선언 이후

이 선언 이후 교사들은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교사운동을 활발하게 벌이기 시작한다. 1987년 9월 27일 '교육민주화실현과 '민족·민주·인간화교육'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민주교육추진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를 창립하였으며, 마침내 1989년 5월 2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창립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