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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겨울의 내의 한 벌-엠네스티 한국위원회

“아빠, 양심수가 뭐예요?”

중학생 인철이 자기 아버지에게 묻는다.

“응. 양심수? 가만있자..... 양심수란 게 말이야. 자기 양심을 지키다가 죄수가 된 사람을 말하는데....”

아빠 허진호씨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한다.

“옳지! 너 어릴 적 읽은 동화 중에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 생각나니?”

“예. 안데르센 동화집에서 읽었죠.”

“맞아. 안데르센이 쓴 동화지. 그런데 거기에 보면 왜 어떤 사기꾼 재단사가 임금님에게 옷을 맞춰주잖아.”

“보이지 않는 투명 옷 말이죠?”

“응. 실제론 아무 것도 만들지 않았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이라고 속이지. 그리고 마음씨 좋은 사람들은 그 옷을 볼 것이고, 마음씨 나쁜 사람은 그 옷을 보지 못할 거라고 하잖아. 허영심 많고 어리석은 임금님은 그 말을 믿고, 그 옷 아닌 옷을 걸친 채 거리 행진에 나서고 말이야.”

“벌거벗은 채로 말이죠.”

“그렇지! 그런데 신하들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은 뭐라고 했니? 모두들 입을 모아 임금님 옷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떠들어대었지. 아부를 잘 하는 사람들 중에는 천사의 옷과 같다고 한 사람도 있었을 거야. 그런데 그것을 구경하던 어린아이들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지. 아이들은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임금님이 벌거벗고 있다고 큰소리로 외쳤어. 모르긴 몰라도 큰일이 벌어졌을 거야. 병사들은 아이들을 잡으러 쫒아갔을 거고.....”

“하하하. 생각만 해도 통쾌해요. 저도 어릴 때 그 동화를 읽고는 얼마나 통쾌했는지 몰라요.”

“근데 말이야.”

아빠 허진호씨가 약간 심각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근데 그게 아이들이 아니고 어른이었으면 어땠을까? 그저 웃고만 넘어갈 수 있었을까? 내 생각으론 그는 틀림없이 잡혀가서 감옥에 갇히거나 고문을 당하거나 했을거야. 그렇지 않니?”

“그렇긴 하네요.”

인철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만일 그가 감옥을 가거나 재판을 받게 된다는 그의 죄는 무엇일까?”

“음.....글쎄요.”

인철이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그의 죄는 정직하게 자신의 양심대로 말했던 것 뿐이잖니?”

“그렇죠.”

아빠의 말에 인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에도 그와 비슷한 고사가 있단다. 어떤 힘 센 신하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왕 앞에서 다른 신하들에게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했지. 그런데 다른 신하들은 그게 말이 아니라 사슴이란 걸 다 알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양심에 따라 정직하게 말했다간 목숨이 달아날 지도 몰랐기 때문이야. 먼 옛날이야기 같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역사 속에선 이런 일들이 사실은 흔하게 벌어지곤 해. 너 남아프리카 대통령을 지낸 넬슨 만델라라는 분 알지?”

“예.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사람 말이죠.”

“응. 그 분도 자기 나라 흑인들의 지위 향상을 위해 일하다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했지. 그리고 우리나라 김대중 전 대통령도 민주주의를 위해 독재정권과 싸우다가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했고.... 사실 그 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엔 그렇게 자신의 양심에 따라 정직하게 살다가 고생을 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오늘 우리가 이렇게 민주사회에서 살게 된 것도 모두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 덕이야.”

“그 분들을 모두 양심수라 부르는군요.”

“응. 맞았어. 이젠 알겠지?”

그러고 나서 아빠 허진호 씨는 잠시 생각에 잠긴 눈빛으로 아들을 쳐다보았다.

“이 세상엔 지금도 지구 어디선가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따라 살다가 감옥에 갇혀 자신과 가족들이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란다. 저 아프리카에서 중동, 유럽이나 미국, 아시아 어디든지. 그런데 그런 양심수가 없는 세상을 만들려고 애쓰는 사람들과 단체도 있지. 너 국제 앰네스티라고 들어 본 적이 있니?”

“아뇨. 그런데 앰네스티라면 영어로 사면이란 뜻 아닌가요? 영어시간에 배웠어요.”

“그래. 맞았다. 국제 앰네스티는 ‘국제사면위원회’를 말해. 세상의 모든 양심수가 감옥에서 풀려나기를 기원하며 그들을 지원하고, 옹호하기 위해 1961년 영국 변호사 피터 베넨슨이 주창하여 만들어진 단체지.”

“와! 그런 좋은 단체가 있었다니! 그럼 우리나라에도 있겠네요.”

“응. 당연하지. 우리나라에도 1972년 지부가 창립되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단다. 양심수 없는 세상을 꿈꾸며 만들어진 단체지만 때로는 그분들이 양심수가 되어 있곤 했지. 우리들에게도 암흑 같은 시대가 있었거든.”

허진호 씨는 추억에 잠긴 듯이 하늘을 한번 쳐다보았다.

1970년 초반, 대학시절. 

유신이 선포되고 계엄령이나 다름없는 대통령 긴급조치가 연속으로 발동되면서 세상은 얼어붙은 겨울공화국이 되어버렸다. 하얀 것을 하얗다고 할 수 없었고, 검은 것을 검다고 할 수가 없었다. 모든 언론은 철저히 감시되었고, 술자리에서도 함부로 말을 하거나 불평을 하거나 하면 어디론가 끌려가 고초를 당하고 심하면 캄캄한 감옥에 갇혀 몇 년간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도움을 바라고 싶어도 도와주는 사람 역시 같은 혐의로 잡혀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누구 하나 선뜻 손을 내미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때, 허진호 씨 역시 다른 친구들이랑 잠시 반정부 시위에 연루되어 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추운 겨울날 아무도 면회 오는 사람이 없어 떨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어느 날 누군가 찾아와 내복 한 벌과 약간의 영치금을 넣어주고 갔다. 넣어준 사람의 이름을 보니 ‘국제 앰네스티 본부’라고 되어 있었다. 

국제 앰네스티..... 그때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다. 아무튼 그때 넣어준 내복 한 벌로 그는 추운 겨울을 그나마 따뜻하게 보낼 수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고마운 손길이 잊혀지지 않고 남아 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 당시 앰네스티 한국 위원회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처음 앰네스티운동의 씨를 뿌리고 뿌리를 내린 사람은 윤현 목사였다. 1970년 여름, 그때 서울에서는 국제펜클럽연차대회가 열려 각국으로부터 문인, 언론인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그 무렵 한국 지식인들의 최대관심사는 이른바 ‘오적필화사건’ 연루자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시인 김지하가 국회의원, 장성, 재벌, 고급공무원 등을 일제 때 나라를 팔아먹은 오적에 비유하여 통렬한 비판을 가했던 담시 형식의 ‘오적’은 장준하 선생이 간행하는 월간지 ‘사상계’에 실렸는데 당시 개발 독재에 숨 막혀 있던 사람들에게 놀랍고도 큰 충격을 던져 주었다. 당국에서는 즉시 김지하 시인과 출판사 편집진 등 관계자를 체포하여 재판에 넘겼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들의 구명을 위해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나서야할 때였다. 그런 때 마침 국제 펜대회가 열렸으니 절호의 기회였다.

윤현 목사는 뜻을 같이하는 청년 몇 명과 함께 외국 참가자 숙소가 있는 대연각 호텔의 방을 돌면서 영문으로 된 호소문을 전달했다. 그때 만난 외국인 참가자 중에 마침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에 교환교수로 와있던 독일인 브라이덴쉬타인 교수가 있었다. 그가 윤목사에게 국제 사면위원회, 즉 앰네스티 운동을 소개해주었다. 김지하 시인 같은 양심수의 석방과 지원을 위해 국제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렇게 하여 1972년 창립된 앰네스티 한국 위원회는 그 자체가 가시밭길이었다. ‘양심수의 구원, 사형제 폐지, 고문 철폐, 수감자 처우 개선’ 등을 내세운 앰네스티의 활동이 독재권력의 눈에는 가시처럼 비쳤을 것이 분명했다.

앰네스티 초창기부터 활동한 한승헌 변호사의 회고에 보면 당시 그들이 당해야했던 탄압과 고통의 한 단면을 선명하게 엿볼 수가 있다.

‘그 해 1975년 여름철에 접어들면서 불행한 사태가 연달아 발생하였다. 이재오 사무국장이 가톨릭 농민회 주최 안동 집회에 나가 정부를 비판하였다 하여 구속되었는가 하면, 카톨릭 안동교구 사목국장이자 우리 모임의 이사인 정호경 신부가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그 뿐인가. 우리 이사이자 전북 지부장인 백윤석 목사, 전주 지부 회원인 김경섭 목사, 역시 우리 이사인 문동환 목사, 이문영 교수 등이 시국 사건에 관련된 혐의로 구속되었다. 우리 회원인 문정현 신부가 검찰의 형집행정지 취소로 재수감되었는가 하면, 부산지부의 노경규, 조태원 두 간부도 긴급조치 위반으로 실형선고를 받았다. 이사인 백낙청 교수도 구류처분을 받았고, 아카데미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고문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서명작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이우정, 이재정, 송건호 이사와 내가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아빠. 그러니까 양심수 없는 세상을 꿈꾸었던 그 분들이 오히려 양심수가 된 셈이군요.”

인철이가 아빠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단다. 사슴을 말이라고 강요하는 세상에서 사슴은 사슴이라고 정직하게 말하기란 생각보다 어렵단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옹호하는 것도 똑 같이 어려운 일이야. 너도 학교에서 어떤 힘없는 친구가 힘센 친구에게 당하고 있을 때 나서서 도와주려면 용기가 꽤 필요할 걸. 그렇지 않니?”

“그건 그래요.” 

“사실 양심이란 인간이 지닌 가장 고귀한 감정 중의 하나지. 그래서 우리 헌법에서도 양심의 자유를 지킬 권리를 보장하고 있지 않니? 그런데 그걸 지키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해. 때로는 목숨을 걸 각오까지 해야 할지 몰라. 특히 독재자 치하에 사는 사람들에겐....”

“그래서 국제 앰네스티 운동이 필요한 거군요.”

“그래. 어려운 시절 우리가 도움을 받았듯이 이제 우리도 지금 이 세상 어디에선가 양심에 따라 살다가 외롭게 감옥에 갇혀 고통을 받는 사람을 위해 도움을 주어야겠지. 그게 우리가 우리의 양심을 지키며 사는 또 하나의 길이니까.”

“알았어요, 아빠!”

인철이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해 겨울의 내의 한 벌, 그것은 허진호 씨에겐 한 벌의 내의가 아니라 저 먼 곳에서 온 따뜻한 세상의 양심이었다.

글 김영현(소설가)
1984년 창작과비평사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로 등단, 소설집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해남 가는 길>, <내 마음의 망명정부>, 장편 <풋사랑>, 시집 <겨울 바다>, <남해 엽서>등이 있다. 제23회 한국창작문학상 수상, 실천문학사 편집장 역임, 한신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하다가 현재는 양평에서 창작과 공부에만 열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