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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순한 인간과 포악한 청년 사이 - 항소이유서

왜 「꿈」을 버려야했나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78년 2월 하순 고향 집 골목 어귀에 서서 자랑스럽게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눈길을 등위에 느끼며 큼직한 짐보따리를 들고 서울 유학길을 떠나왔습니다. 그때 피고인은 법관을 지망하는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열아홉 살의 촌뜨기 소년이었을 뿐입니다.』

1985년 7월 6일자 동아일보 6면 상단의 窓이라는 박스 기사의 제목과 내용이다 . 당시 서울대 프락치 사건과 관련하여 재판을 받고 있었던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를 소개하고 있다.

이 기사에서 기자는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중 평범한 대학 신입생이었던 피고인이 제적 → 강제징집 → 복교 → 제적 → 구속의 과정을 거쳐 「문제 학생」으로 지목되어 가는 과정을 소개하면서 「문제 학생」의  「항소」에 귀 기울여 달라고 하고 있다.


서울대 프락치 사건 vs 서울대 외부인 감금 사건

1983년 12월 21일 이른바 학원자율화조치가 발표되었다. 대학에서 쫓겨난 학생 1,363명에 대한 복교 조치, 공안 관련자에 대한 특별사면, 해직교수의 복직 부분허용, 정치 활동 피규제자 다수에 대한 해금, 그리고 대학에 상주하던 경찰 병력이 철수하면서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었다. 1982년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치안본부장(현 경찰청장)이 “교내에 경찰을 상주시킨 일 없다. 유언비어의 진원지를 밝혀내어 발본색원하겠다.”(1982년 10월 26일 안응모 당시 치안본부장의 국회 답변 등)라며 부정했던 대학내 상주 경찰병력에 대하여 정부 당국이 공식적으로 철수를 발표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대학의 구성원들은 정부의 발표를 믿지 못하였다. 대학내 곳곳에 설치된 공안 기관원의 감시 초소, 교직원과 공안 기관원의 공공연한 연계 사실, 캠퍼스를 배회하는 정체불명의 젊은이들, 그리고 학생운동 내부에 침투한 프락치에 대한 불안감 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경찰병력 철수 발표는 “눈 가리고 아옹”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1984년 9월 서울대 학생회 간부 등이 복학생 모임, 법과대학 사무실, 강의실, 도서관 등에서 학생활동에 대한 정보 수집 활동을 하였다고 의심한 다른 학교 학생과 민간인 등 4명을 정보기관의 프락치라고 판단하고 감금 폭행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유시민은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항소이유서>를 작성하여 서울형사지방법원 항소부에 제출하였는데, 그 항소이유서가 담당 재판부뿐 아니라, 법조계에서 회람되고, 재야인사, 대학생들이 돌려보면서 외부에 알려지고 결국 기사화까지 되었다.

부정한 시대의 가장 온순한 인간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는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네크라소프의 싯귀로 끝맺으면서 읽는 사람에게 강력한 느낌을 선사하고 있지만, 그의 항소이유서 중 백미는 자신이 운동권 대학생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서술한 내용이라 여겨진다.

항소이유서 15쪽(표제 제외) 중 11쪽까지는 프락치 사건 또는 외부인 감금 사건에 대한 그의 입장을 피력하고 있고, 이후부터는 ‘폭력 과격 학생’의 본보기처럼 되어버린 그의 개인사를 서술하고 있다.

“5월 어느날, 눈부시게 밝은 햇살 아래 푸르러만 가던 교정에서, 처음 맛보는 매운 최루가스와 걷잡을 수 없이 솟아 나오던 눈물 너머로 머리채를 붙잡힌 채 끌려가던 어리디어린 여학생의 모습을, 학생회관의 후미진 구석에 숨어서 겁에 질린 가슴을 움켜진 채, 보았던”  그날 이후 그는 달라졌다고 서술하면서

“열여섯 살 꽃 같은 처녀가 매주일 60시간 이상을 일해서 버는 한달치 월급보다 더 많은 우리들의 하숙비”에 대한 부끄러움을,

“사랑하는 선배들이 ‘신성한 법정’에서 죄수가 되어 나오는 것을 보고” 법관에 대한 꿈을 버렸음을,

1980년 이른바 5.17조치에 따라 군대에 강제징집된 이후, 제대를 불과 두 달 앞두고 당한 ‘녹화사업’ 또는 ‘관제 프락치 공작’ 앞에서  “그들의 요구에 응하는 타협책으로써 일신의 안전을 도모할 수밖에 없있었”던 양심의 고통을 절절하게 표현하였다.

모순투성이이기 때문에 더욱더 자기 조국을 사랑했던 한 젊은이가 보통의 온순한 인간에서 열렬한 투사가 되어가는 과정을 기술한 <항소이유서>는, 그의 삶의 여정이 결코 특수한 예외가 아니라 그 시대의  젊은이가 공유했던 보편적 경험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