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글자 크기 조절

친구여, 뒷일을 부탁하네

1. 잠들지 않는 탄광촌

새벽 한 시, 탄광촌의 밤은 새로 깨어난다. 오후 네 시에 출근해 자정에 일을 마친 을방광부들을 태운 통근버스들이 탄가루를 날리며 산길을 내려가면 마을에 아직 문을 연 한두 개 술집이 이들을 기다렸다. 방금 샤워를 한 광부들은 덜 마른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소주를 마셨다. 듬성듬성 썰어 볶은 돼지고기며 누런 돼지껍질이 이들의 목과 폐에 달라붙은 석탄가루를 씻어내 준다는 헛된 소망을 품고, 양재기에 소주를 가득 부어 한 번에 들이마시며 지하 수 킬로미터 땅속에서 겪은 공포를 잊으려 애썼다.

수만 명의 광부가 흩어져 사는 태백탄전지대의 중심 도시인 태백시 황지동의 노동상담소도 그 시간까지 불이 켜진 채 사무국장이 홀로 지키고 있었다. 

“안 국장! 아직 안 자?”

전화가 울린 것은 새벽 두 시, 술 취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강원탄광 노동자 성완희다. 

“네 전화 기다리고 있었지. 어디야?”

“술집이야. 유인물 돌리고 사람들하고 술 한 잔 하는 중이야.”

전화 속 사람들의 취한 말소리들이 시끄럽다.

“회사에서 방해는 하지 않았고?”

“아무 반응도 없어. 아무리 북을 치고 구호를 외쳐도 회사나 사람들이나 다 못 본체 하기만 해.... ”

일 년 전인 1987년 여름의 파업을 주동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노동자 한 명이 복직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에 들어간 지 사흘째였다. 역시 파업의 주동자로 해고되었다가 복직된 성완희는 몇몇 동료들과 함께 그의 복직을 요구하며 매일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안 국장, 아무래도 이렇게 싸워서는 소용이 없겠어. 누군가 하나가 죽어야 할 것 같애.”

피곤한 얼굴로 눈을 부비며 듣고 있던 상담소 사무국장은 버럭 화를 냈다.

“또 그 소리! 누구 하나 죽는다고 세상이 바뀌면 벌써 바뀌었어! 죽을 용기가 있으면 더 열심히 싸워야지 죽긴 왜 죽어? 제발 그딴 소리 하지 말라고 했지?”

“아냐, 세상은 못 바꿔도 강원탄광은 바꿀 수 있을 거야. 안 국장, 나 분신할 거야. 뒷일을 부탁해.”

“완희야! 정신 차려! 술 그만 마시고 기숙사 들어가서 자. 아니면 내가 그곳으로 갈까?”

“오지 마. 나 생각 좀 하고...”

전화가 끊겼다. 쫓아가려 해도 어느 술집인지 알 수 없었고 강원탄광이 있는 철암동까지 이십 킬로가 넘는 밤길을 달려갈 교통수단도 마땅치 않았다. 설마 오늘밤에 일이 벌어지랴... 사무국장은 담배를 피워 물고 밖으로 나왔다. 

해발 6백미터 산악지대의 여름밤은 도시의 가을처럼 서늘했다. 여름이라도 짧은 팔 셔츠를 입을 일이 없는 곳이었다. 검은 물이 흐르는 하천을 따라 난 골짜기에 길게 자리 잡은 돼지우리처럼 초라한 사택들 위로 밤안개가 밀려오고 있었다. 어두운 밤거리로 탄광의 통근버스들이 지나갔다.

2. 살아만 있어다오

상담소는 동쪽으로 난 전면이 미닫이 유리문으로 되어 있었다. 여름이면 새벽 다섯 시부터 빛이 쏟아져 들어와 여덟 시만 되면 햇살의 입자들이 실내에 가득 차 눈을 따갑게 했다. 이 날도 사무실에 딸린 방에서 잠깐 눈을 붙인 사무국장은 일찍 찾아온 상담소장 신성식 목사와 한보탄광 해고노동자 백형근을 맞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강원탄광 농성이 시작된 지 일주일째, 성완희는 전날 저녁에도 동료들과 함께 상담소에 찾아온 길에 분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사무국장에게 심하게 질책을 받고 조용히 사라졌다. 그리고는 아침까지 아무런 전화가 없었다. 매일 밤 한두 시만 되면 울리던 상담소 전화가 조용하기는 오랜만이었다.

목사가 물었다.

“강원탄광 문제는 진전이 좀 있습니까?”

사무국장은 고개를 저었다.

“열심히 싸우고는 있는데 회사 측은 아무 반응이 없네요. 노조는 회사와 한통속이 되어 나 몰라라 하구요.”

“작년의 6월항쟁으로 민주주의는 진척되었다지만 노동자들의 처지는 여전하니 큰 문제입니다.”

목사의 말에 백형근이 대신 답했다. 

“노동문제는 민주주의보다도 더 근본적인 문제이니 어디 쉽게 해결되겠습니까? 더 끈질기게 장기적으로 싸워 스스로 권리를 찾아야지요.”

이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네, 전데요...”

무심코 전화를 받던 사무국장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목사님, 성완희가 분신했답니다.”

잠시,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전화의 내용은 간단했다. 성완희 일행이 이른 아침에 노조사무실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가자 노조간부들이 유리창을 깨며 공격해 왔고, 이에 성완희가 미리 준비해 간 휘발유를 몸에 붓고 분신해 버린 것이다.

곧바로 백형근이 타고 온 소형 스쿠터 뒤에 올라 성완희가 실려간 장성병원으로 달려가는 사무국장의 얼굴은 눈물로 뒤덮였다. 

‘제발, 제발... 살아만 있어다오, 완희야. 제발,,, 죽으면 안돼, 완희야... 세상에 너의 죽음보다 고귀한 진리가 어디 있단 말이냐... 제발 살아 있어다오...’ 

두 사람은 스물아홉 살 동갑이었다. 만난 지 일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탄광에서 유일한 동갑내기 친구였다. 부모 없이 자라나 탄광까지 흘러들어온 성완희는 늘 외로운 청년이었다. 한밤중에도, 새벽 두 시에도, 아무런 용무가 없어도 전화해 안부를 묻는 따뜻한 인간이었다. 딱히 상의할 일이 없어도 일부러 혼자 먼 길을 찾아와 술을 사주고 가는 친구였다. 차이가 있다면 사무국장은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성완희는 항상 국장이라는 호칭을 붙였다는 점뿐이었다. 

‘하나님, 제발 우리 완희를 살려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완희를 살려주세요...’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기도였다. 눈을 감고, 이를 악물고, 숨죽여 울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3. 제발 물을 다오

장성병원 응급실 앞 주차장에는 한 무리의 노동자들이 바닥에 앉거나 담배를 피우며 서성이고 있었다. 모두들 정신을 놓은 듯 했다. 담배 연기만 맴돌 뿐 입을 열어 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사무국장도 물어볼 것도 없이 응급실로 뛰어 들어갔다.

응급실에는 간호사와 환자 사이의 승강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가만히 계세요. 약을 발라야 해요.”

간호사들이 매달려 불 탄 옷을 뜯어내고 약을 바르려 했으나 병상 위의 환자는 완강히 거부하고 있었다.

“놔둬요. 죽으려고 한 건데 치료 필요 없어요.”

목까지 불에 탔지만 아직 음성은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병상 위에 앉은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크고 건장한 체구만이 본인의 흔적을 느끼게 해줄 뿐, 서글서글한 인상에 잘생긴 외모는 완전히 사라지고, 불에 타다 만 검고 붉은 거대한 괴물이 앉아 버팅기고 있었다. 원래 크고 검은 눈을 더욱 부드럽게 만들어주던 긴 속눈썹도, 정으로 다듬은 듯 윤곽 뚜렷했던 코와 입술도 모두 타버리고 구멍만 남아 있었다. 커다란 귓바퀴도 다 녹아 일그러져 버렸다.

“완희야, 가만 있어. 치료를 해야지.”

살갗이 벗겨져 핏물이 흐르는 그의 팔목을 잡는 사무국장의 눈에서는 또 다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안 국장, 나 죽을 거야. 나 하나 죽어서 노동자가 잘 살 수 있게 된다면 나 죽을 거야...”

입술이 다 타버려 없어지고 이빨만 하얗게 드러난 입에는 말할 때마다 기도에서 올라온 검은 재와 가래가 그르렁거렸다.

“이 바보야! 살아서 싸워야지, 왜 죽어? 넌 살 수 있어....”

도대체 어떻게 살아난단 말인가? 살면 또 어떻게 한단 말인가? 눈도 감지 못하고 귀도 입도 다물 수 없고 코도 귀도 없는 몸으로 살아서 무얼 하란 말인가? 그럼에도 제발 살아나기만을, 오로지 생명이 꺼지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달래고 달래 겨우 몸에 붕대를 감은 성완희는 곧바로 구급차에 실려 원주기독병원으로 향했다. 사무국장과 노동자 한 사람이 동승했다. 보통 세 시간이 걸리는 굽이치는 산길이었다. 오가는 차라곤 거의 없는 외길을 질주하는 구급차 안에서 성완희는 자꾸만 병상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안 국장, 물 좀 줘! 나 목말라 물 좀 줘!”

“안 돼. 물마시면 바로 죽는대. 원주까지만 참아.”

“나 죽으려고 한 거야! 나 죽게 내버려 둬! 물 좀 줘!”

성완희는 손목과 발목에 꼽힌 링겔 주사바늘들을 뽑아버리며 고함쳤다. 그러나 사무국장은 끝까지 물을 주지 않았다. 주고 싶어도 줄 물도 없었지만, 물을 주면 즉사한다는 의사의 말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울면서 그를 침상에 눌러 눕혔다.

온몸의 핏물을 쏟아내며, 성완희는 차츰 지쳐갔다. 물을 달라는 소리도 점점 작아졌다. 응급차가 영월에 다가갈 무렵에야 다시 벌떡 일어나더니 고함을 쳤다.

“안재성! 재성아 이 새꺄! 물 좀 달란 말야!”

처음으로 불려보는 이름이었다. 늘 국장이라고만 호칭하던 그의 마음속에 들어있던 친구가 처음으로 튀어나온 것이었다. 또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알았어. 그럼 영월의료원에 들리자. 거기 가서 물을 달라고 해볼게.”

성완희는 그제야 힘을 놓으며 쓰러져 누웠다. 그것이 끝이었다. 영월의료원에 도착했을 때는 완전히 정신을 잃어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물을 준다 해도 마실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의식불명에 빠진 성완희는 8일만에 사망했다. 그의 장례는 이천 명이 넘는 노동자와 학생들의 주관으로 5일에 걸쳐 치러졌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4대 주요탄광의 노동조합이 민주적인 집행부로 교체되었고 다른 여러 탄광에서도 쟁의가 잇달았다. 그러나 석탄산업의 사양화로 수년 만에 대다수의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노동운동도 함께 소멸한다.

전태일의 분신 이후 현재까지 1백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싸우다가 분신이나 투신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 안재성

1989년 장편소설 <파업>으로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이후 대표작으로 <사랑의 조건>, <황금이삭>, <경성트로이카>, <연안행>,등의 장편소설과 <이현상 평전>, <박헌영 평전> 등의 인물평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