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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참여적' 예술가의 기억

‘민중미술’ 개념은 군부독재시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당시 모더니즘 주류 '미술' 장에 대한 반동으로 1970년대 중후반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삶의 현실을 반영하는 미술’을 지향한 ‘민중미술가’들은 1980년대 들어 민주화운동 현장과 결합했고, 운동가나 활동가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노동 현장이나 조합, 단체 등과 함께 활동했고, 걸개그림, 깃발, 선전 인쇄물 등 각종 현장 도구를 만들었다. 주류 예술계에서 ‘촌스러운 그림’을 하는 활동가로 배척받기도 했으나, 민중의 이상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며 한국 미술사 내 한 줄기를 형성했다. 민중미술가들은 미술과 미술가가 공동체와 사회 변화의 도구로 사용되기를 추구했던 ‘사회참여적 예술가’들이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은 2022년 1980년대 문화예술운동의 다양한 갈래 중 민중미술 부분, 특히 1982년 결성된 민중미술가 동인 ‘두렁’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예술적 실천 행위’인 ‘현장 지향적 민중미술’ 활동 기억을 채록했다. 이들은 주로 노동조합과 연계 속에 문화예술운동을 펼쳤고, 대다수는 두렁으로 묶이기 전부터 이미 노동운동, 농촌운동, 학생운동 등에서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문화예술운동 구술 사료는 현장 미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찰, 노동운동․노동자문화운동․농민운동 등 부문 운동과 문화예술운동의 상관관계, 다른 민주화운동 조직과의 연계 및 영향력과 구체적 활동 양상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화운동사는 물론 문화예술사에도 중요한 한 축인 민중미술가들의 활동 기억, 개인적․시대적 맥락의 교차를 따라가는 일은 우리 사회상을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 기대한다.

<깡순이>

많은 민중미술 작가들은 노동 현장에서 일했다. 이은홍 작가는 대한금속에서 일을 하다 부상을 입고 쉬던 중 서울노동운동연합 기관지의 네 컷 만화 <깡순이> 작업을 맡게 되었다. 서노련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당한 이기홍은 이적 표현물 제작 혐의로 구속되어 6개월간 수감 생활을 했다.


"...이미 이제 다, 인쇄소에서 편집부 다른 친구들이 이제 검거가 된 상태여서 거기서 보안사 친구들이 다 잠복하고 있던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거기서 이제... 저는 모르고 그냥 갔다가 거기에서 이제 잡혔죠. 잡혀가지고 보안사로 가게 되었는데... 거기 감방지키는 까까머리 아이들이 딱 보이까 버클에 국방부 마크가 있더라고요. 허리띠 버클에."


그의 노동자 교육용 학습만화 <사장과 진실>과 <깡순이>는 만화로서는 국가보안법에 저촉된 첫 사례가 되었다. 그가 불법 납치 구금에 항의하기 위해 구치소에서 쓴 글은 이기연의 도움으로 외부에 알려졌다.

옥중에서 이은홍은 노동미술이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노동미술의 당위성을 무엇인지, 노동미술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 운동의 토대가 되는 개념을 고찰했다. 또 그 내용과 형식을 어떠한 방식으로 찾아낼 수 있을지 창작자로서의 고민을 써냈다.


노동미술은 첫째 우리들의 역사와 현실의 모습들을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그려내야 하며, 둘째 해방된 삶에 대한 개인적, 집단적 갈구, 즉 미래의 세계에 대한 일천만 노동자가 원하는 전망을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하며 셋째, 노동자들의 투쟁을 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서 일천만 노동자의 도덕적 숭고함, 노동운동의 역사적 정당성을 표현해야 하고... (p.26)


...우리는 너른 방면에 걸쳐 실천하고 그것을 작업에 반영시키고, 또 실천을 통한 검증을 해내고 수정하고 창작하는 방법을 채택해야 한다. (p.29)



또한 <깡순이>의 주인공 캐릭터 ‘깡순이’ 보여줬던 방식의 변화와 변주에 따른 효과는 어떠했는지 돌아보았다. 그리고 공감을 사기 어렵고 ‘무력’해보일 때도 있었던 깡순이 캐릭터가 12화가 되어서야 좀 더 현실과 가까워졌다고 자평했다.


...냉소적, 관조적 속성을 지난 형식적 취약점을 극복하고 노동자 입장에 선 풍자를 해내려는 노력에 대한 양적 측면에서 위로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고...앞으로는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당당히 서도록 ‘깡순이’가 현실적(시대적) 전형성을 획득하여야 할 것이다.(p.33)

연극 <동일방직 문제를 해결하라>

김봉준은 70년대 후반부터 노동조합과 연계해 활동을 해왔다. 그는 1978년 동일방직사건으로 해고된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한 연극 <동일방직 문제 해결하라>를 공동 연출 했다. 노동자들은 연극에 직접 출연했고 김봉준도 깡패 역할로 출연했다. 그는 연극이 끝낸 후 감정이 복받친 여성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갔던 후일담을 들려주었다. 당시 극장에서 뛰쳐나갔던 동일방직 이총각 지부장을 비롯한 참여 노동자 전원은 투옥 구류되었다.

박복례: 니들 정말 선거 할 거야
집행부 대위원: 그럼 해야지 못할 이유가 없잖아
남자직원: ... 이것들이 똥맛이 어떤가를 보여주지
해설자: 그러면서 방화수통에서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똥을 꺼내더니 대의원들의 면상에다 바르고... (p.31)


(중략)


어느 여공 1: 이제 더 이상 이렇게 이재민 구호물자받듯 사회온정만 기달릴 수가 없다
어느 여공 2: 그래요, 이런 식으로 버티는 것도 한도가 있지 무슨 뾰족한 수를 내던가 안되면 각자 자기 살길을 찾도록 하자
어느 관객 3: 차분히 생각을 가마들어 노동운동의 차원에서 새로운 방향을 찾아봅시다.
어느 여공 4: 지금이라도 회사에 들어가 담판을 짓고 안되면 끝장을 보자! (p.35)

“...진흙탕 잔뜩 버무린 것을 한 바가지를 만들어서 가지고 가 가지고 그 자리에서... 호각 소리를 빽 불면 이제부터 사건 시작이야. 이제 투표장을 난장판을 만드는 걸 우리가 했지. 그러니까 흙탕물을 마구 던지는 거야. 거기 나와 있는 여공들뿐만이 아니라, 자기네들 그... 노동자들 노동복 있잖아. 하얀 애리 이렇게 있는 거. 그래서 거기서 나와서 이렇게 하고 있는데, 거기다 뿌린 게 아니라 관중석에 뿌린 거야. 이 고통을 함께 하자고. 그리고 끝이야. 


그걸로 아웃하자. 끝났는데 얘네들이... 난 그 다음 대책이 없었어. 그런데 우는 거야. 그 자리에 앉아 가지고. 얼마나 억울하면. 그게... 연극인데도, 엉엉 울더니, 그 다음에 난 계획 몰랐는데, 이 제목이 슬로건처럼 붙어 있는 걸, `동일방직 문제 해결하라' 이걸, 뚝뚝 올라가더니 딱 뜯어내더니 현수막 들고 “와!”하고 나가는 거야, 거리로. 이게 그런데, 그 바로 앞에는 을지문덕 장군처럼 무장하고서는 경찰들이 짝 도열하고 있는 거야. 유신 시대의 경찰은 거의 전쟁 때 폭력 경찰이야. 군인하고 마찬가지야. 가자마자 문 앞에서 다들 두들겨 맞으면서...“

<두꺼비>

김봉준과 함께 ‘두렁’ 창립 동인이었던 이기연은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창립 판화 <두꺼비> 제작 과정을 이야기했다. '두꺼비'는 뱀에게 잡아먹힘으로써 뱀을 죽이고 결국 살아남는 두꺼비를 통해 조직의 투쟁 의지를 표현한 민청련의 조직 상징물이었다. 민족생활문화연구소 활동과 노동자 교육용 그림 제작, 민청련 창립 준비와, 민가협 대변인 활동 등을 했던 이기연은 민청련과 두렁 활동, 육아까지 떠맡았던 고된 시기를 말했다. 그는 미술학원에서 아이를 업고 <두꺼비> 판을 팠고, 두렁의 초대 회장이었던 장진영과 함께 판화를 찍어냈다.

“그때 이제 민청련이 그야말로 지식인들의 총집합체였어요. 공개적인 정치투쟁 단체를 만들자...이제 그런 각오로 민청련을 시작하니까, 나는 애를 낳는 것도 혼자, 먹고 사는 것도 혼자, 그 집안일을 하는 것도 혼자, 감당을... 내가 다 떠맡게 되는 그 상황과 덧붙여서 떠맡에 된 거요. 거기다가 두렁까지 이렇게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내 본질상은 나는 그림을 그려서 두렁에서 내 역할을 해야 되는 게 개인적으로는 가장 큰 거였어. 그런데 가장 큰 것을 제일 끝으로 미뤄놓고, 살아남는 것 하나, 그 다음 죽지 못하게 하는 것 하나. 이거를 먼저 해결해야 돼. 우선순위에서 그게 먼저인 거야.”


“...상징적인 스토리를 만들자. 그게 ‘두꺼비’ 얘기를 만든 거예요. 연성수 씨 머리에서 나온 거예요. ‘두꺼비 이야기가. 그래서 ’살신성인이라는 것들을... 딱 상황과 맞는 거잖아요. 민청련의 상황과. 그래서 그 그림을 그려야 되는데, 엉터리로 못하는 게 내가 자신이 없으면 못해. 그래 가지고 그 애를 업고서... 동학부터 시작해서 이 민청련 정신을 상징하는 사람들을 큰 애를 업고 판 거지.”

오픈아카이브에서는 채록한 구술에 대해 하이라이트 영상과 상세 목록을 공개하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방문을 통해 구술 녹취록 전문을 열람할 수 있다.

참조: 

양정애, 80년대 ‘현장’지향 민중미술의 재구성- <1985년 한국미술, 20대의 힘>전 사건에 얽힌 미술동인 ‘두렁’의 활동을 중심으로, 2018년 민주주의 학술 펠로우 연구 보고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2018

한국미술경영학회, 1980년대 문화예술운동 1 구술채록 결과보고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