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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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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송기인
면담자
차성환
구술일자
(1차) 2023.7.17. (2차) 2023. 7.18.
구술장소
구술자자택
구술시간
7시간 32분 46초

구술컬렉션 > 재야운동 > 지역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61-1971 카톨릭신학대학교

1972-2005 사제 서품 후 사목직 재직

1974 부산인권선교협의회 조직

1985-1989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조직 및 운영

1989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창립 및 공동대표

1994 사단법인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창립 및 회장 

1994-2000 부산민주공원 추진 및 개관

2000 요산선생 생가복원 및 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결성

2005-2007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초대 위원장

2018-2021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초대 이사장

구술내용 요약

송기인은 1938년 전남 순천에서 출생하였다. 1960년 2월 부산 원예고를 졸업하고 국회통신이라는 언론사에 취업을 하여 3년간 견습기자 생활을 했다. 그때 사회의 부패상을 접하고 이승만 정권에 대한 분노를 느꼈다. 서울에서 기자 생활 도중에 4‧19를 맞았는데 시위에 참여하고 부산에 내려와서 온천장에서 서면까지 시위를 하다가 트럭을 타고 마산으로 가서 시위를 하였다. 1961년 카톨릭대학교에 입학, 1972년 12월에 신부 서품을 받았다. 당시는 유신체제라는 암울한 시기였는데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는지라 기독교방송에서 아침 명상 시간을 맡아서 방송을 했는데 정보기관의 압력에 의해 방송을 그만둔 적이 있다. 1974년 정의구현사제단 결성에 역할을 했으며, 1980년 5‧18항쟁이 끝난 후 광주를 방문하여 진상조사를 하였다. 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났을 때 맨 처음 잡혀 고초를 치르기도 했다. 송기인은 그 후 민족문제연구소 발족을 비롯하여 1985년 5월 부산민주시민협의회 발족,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민주공원 조성 등 부산지역의 시민사회단체를 만드는 데 앞장섰으며, 지역의 민주화 원로로서 지금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1974년 전포성당의 지주교 석방 현수막 사건(부산의 상징적 반유신투쟁)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