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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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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김정택
면담자
신동호
구술일자
2018. 8. 29
구술장소
현대사기록연구원
구술시간
176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YWCA위장결혼식사건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69 중앙고등학교 졸업

1971 서울감리교신학대학 입학

1978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 전국 회장

1984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총무

1986 산마루민중교회 창립, 담임 취임

1987 인천지역호헌철폐국민운동본부 대변인

1992 목사 안수

1998 강화도환경농업농민회 결성, 회장 취임

2004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및 풀뿌리학교급식국민연대 공동대표

2018 인천광역시 친환경농업협회 회장

구술내용 요약

전도관에 다닌 어머니의 영향으로 교회에 다녔고, 고등학교 때 KSCF에 적극 참여했다. 폐결핵 걸린 친구 요양을 도우러 감리교회가 운영하는 대한수도원에서 생활한 것이 인연이 돼서 감리교신학대학에 진학했다. 감신대 기숙사 생활과 방학 중 빈민촌 합숙훈련, 군 입대, 제대 후 빈민운동 현장 활동을 하면서 기독교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자리하게 되었다. 1976년 감리교청년회전국연합회 회장을 맡아 각 교단 청년 대표들과 함께 한국기독청년회(EYC)를 창립, 초대 현장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77년 긴급조치 9호 철폐 운동 분위기가 대학가에 돌면서 고교 동창 정문화의 권유로 감신대 긴조9호 반대 집회를 기도했다가 사전 발각돼 구속,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EYC 회장에 취임해 6개 교단 청년세력을 조직화하고 전국 규모 사회선교대회를 개최하는 등 교류를 강화했다. 그러던 중 10.26사태가 일어나고 박종렬 목사가 찾아와 통대선거반대 집회 개최를 제안했다. 기독청년세력 내부에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약간의 노선 차이는 있었으나 유신 연장 불가 입장에는 이견이 없어 집회 참여를 결정했다. 집회 형식은 장례식보다 결혼식이 낫다고 생각했고, 민청협에서 신랑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결혼식 사회는 EYC가 하는 게 맞을 것 같아 내가 자청했다. 우리가 맡은 것은 하객 동원이었는데, 결혼식 당일 분위기는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집회는 금방 깨졌고, 꼼짝 없이 연행돼 보안사로 이송됐다. 보안사에서는 분풀이 식의 가혹행위가 이어졌고, 정치권과 연결시키려는 의도로 집중적인 조사를 받았다. YWCA위장결혼식 집회 및 시위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혼미한 정정 속에서 민주화운동 진영이 분명한 입장 표명을 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적절한 행동이었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YWCA위장결혼식 집회 현장 상황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