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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이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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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이우회
면담자
신동호
구술일자
2018. 8. 10
구술장소
현대사기록연구원 회의실
구술시간
132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YWCA위장결혼식사건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72 광주제일고등학교 졸업

1973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입학

1974 민청학련사건으로 구속

1979 YWCA사건으로 구속

1983 “한마당”출판사 시작

1985 한국출판문화운동협의회 회원으로 활동

1987 “판금도서전시회”건으로 구속

구술내용 요약

재수 끝에 한양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해서 방황하다 선배의 권유로 학보사 기자로 들어갔다. 친구 권오걸의 영향으로 사회의식에 눈을 뜨고 야학 활동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민청학련사건이 발표되고 권오걸이 연루된 것을 보고 학보사 다니면서 눈여겨보았던 친구 몇 명을 규합해 최초의 시위를 벌이려고 기도하였다. 그런데 한 친구의 신고로 친구 두 명과 함께 구속되고 말았다. 옥중에서 고교 동기 문국주, 최권행 등을 알게 되고 그 인연으로 민주청년협의회(민청협)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홍보위원을 맡아 회보를 발행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1979년 조성우 회장이 2선으로 빠지면서 회장을 맡은 상태에서 10.26사태가 터졌다. 당시 종로 5가를 중심으로 향후 정국에 대해 낙관하는 분위기도 있었으나 민청협은 강력한 대처 방침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 국장 반대 활동은 종로 5가 쪽에서 뒷덜미를 잡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였고, 결정적으로 내가 튀어버리는 바람에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통대저지 국민대회는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 특별담화 이전부터 결정되어 YWCA위장결혼식 집회로 이어졌다. 나는 집회가 이루어지기까지 잡히면 안 되니까 준비 과정에는 깊이 참여하지 못하였다. 집회 당일 먼저 현장에 있다가 체포돼 보안사에서 혹독한 조사를 받았다. 그 바람에 윤보선 전 대통령 관련 부분을 진술하게 되어 역으로 추궁받는 일을 겪었다. 내게 가장 많은 형이 내려진 것은 민청협 회장으로서 ‘직책수당’이라고 본다. YWCA위장결혼식사건은 당시에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한 것이었다. 그게 내 소임이라면 잘했건 못했건 소임을 다한 것이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보안사에서 해위 관련 부분 진술 과정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