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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순
사업개요
- 서울의 봄과 학생운동
- 18년 5개월 10일간 지속된 박정희 정권은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던 중,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박정희가 피격됨으로써 종결되었다. 이후 전두환 중심의 신군부가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를 단행하고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날 때까지의 과도기를 흔히 ‘서울의 봄’이라 일컫는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1차 연도에서는 이 시기의 주요 사건인 ⑴YWCA 위장결혼식 사건(1979.11.24.), ⑵서울역 회군(1980.05.15.)까지의 학생운동, ⑶사북항쟁(1980.04.21.~24.)을 대상으로 구술 채록을 수행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최정순
- 면담자
- 신동호
- 구술일자
- 2018. 8. 31
- 구술장소
- 현대사기록연구원 회의실
- 구술시간
- 133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서울의봄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75 진해여자고등학교 졸업
1985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2004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졸업
2018~ 제10대 서울시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 성북구2)
- 구술내용 요약
-
이화여대에 입학해 흥사단아카데미(아카데미) 회원 모집 벽보를 보고 입회하면서 학생운동에 깊이 몸담게 되었다. 당시 사회과학에 굉장히 흥미를 느끼고 있었고, 서클 공부가 재미있어서 열심히 하였다. 아카데미를 비롯해 새얼, 파워, 황토, 기독학생회 등 5대 서클이 이화여대 학생운동의 주력이었다. 이들과 네트워크 형성하고 학외 아카데미 모임에도 참여하였다. 학외여대생연합모임도 만들어 교유하였다. 1975년 5월 13일 긴급조치 9호 발동 후 명동가톨릭학생사건, 동아돕기손수건판매사건, 수도여사대 시위미수사건, 새벽지사건, 김지하 양심선언문 배포사건 등에 이대생이 자주 연루되었다. 1977년 4월 검은리본사건부터는 직접 연루되어 수배되기도 하였다. 그해 10월 이정임 주도로 농성사태가 일어나고 유인물이 배포되었다. 1978년 4학년이 되어 이화여대 학생운동을 책임지는 상황이 되었다. 3차에 걸친 시위 계획을 세웠다. 4월 14일 1차 시위에서는 ‘8천 이화인에게’ 유인물 배포 건으로 김안나가 구속되었다. 2차 시위는 5월 4일 사범대학 축제 ‘벗님네와’ 행사 중에 유인물 살포와 함께 이루어졌다. 박인혜, 한경희, 오현주 등이 구속되었다. 3차 시위는 내가 전면에 나섰다. 5월 9일 대강당 채플에서 선언문 낭독 뒤 시위를 선동하였다. 학보사 기자의 도움으로 옷을 바꿔 입고 도피하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오빠의 강권으로 2주 후 자수하여 구속되었다. 출소해서는 동아투위 임채정 선배가 하는 출판사 예조각에 다니면서 민주청년협의회(민청협) 활동에 참가하였다. YWCA위장결혼식 집회 논의를 함께 했으며 1980년대 서울의 봄 때는 복학생대책협의회의 일원으로 정국 대처 방안과 소속 대학 학생운동의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총학생회, 서클연합회 등의 구성에 관여하는 등 학내 활동에도 깊이 개입하는 상황이 되었다. 5월 초 5000여 명이 학생식당에서 1박2일 농성하는 자리에 갔다가 연단에 나가 짧은 발언 후 ‘백치 아다다’를 부르기도 하였다. 5월 13일 연세대의 가두진출 후 전 대학이 가두로 나선 것은 준비되지 않은 행동이라 이미 실패를 예상하고 있었다. 다만 서울역 회군은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본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이화여대의 가두 진출과 서울역 시위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