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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천
사업개요
- 사북노동항쟁
- 18년 5개월 10일간 지속된 박정희 정권은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던 중,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박정희가 피격됨으로써 종결되었다. 이후 전두환 중심의 신군부가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를 단행하고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날 때까지의 과도기를 흔히 ‘서울의 봄’이라 일컫는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1차 연도에서는 이 시기의 주요 사건인 ⑴YWCA 위장결혼식 사건(1979.11.24.), ⑵서울역 회군(1980.05.15.)까지의 학생운동, ⑶사북항쟁(1980.04.21.~24.)을 대상으로 구술 채록을 수행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윤병천
- 면담자
- 송철원
- 구술일자
- 2018. 7. 27
- 구술장소
- 사북 뿌리관
- 구술시간
- 92분
구술컬렉션 > 노동운동 > 사북노동항쟁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74년 2월 경일광업소(고한 소재)를 거쳐 동원탄좌에 입사
1980년 4월 사북항쟁 당시 710항 선산부로 근무
- 구술내용 요약
-
강원도 평창군에서 출생하였으나 청주로 이주하여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농사로는 생계유지가 되지 않아 1974년 2월 동원탄좌에 입사했다. 광부생활을 하며 이원갑, 신경 등과 가깝게 지냈고, 열악한 광부들의 생활을 타개하기 위해 노조지부장 이재기를 이원갑으로 교체하려 했으나 부정선거로 좌절됐다. 광산노련에 항의한 결과 당국은 집회허가를 약속했으나 이를 번복했을 뿐더러 광부까지 경찰차에 치게 되자, 사태가 악화되어 이재기 부인 납치 폭행, 경찰관 사망으로까지 발전했다. 이원갑이 공수단이 사북 공격을 하려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탄약고 등을 점거했다. 결국 부녀회장 등도 참여한 가운데 협상에 들어가 합의사항을 마련하고 사북은 평온을 되찾았다. 그러나 집에서 연행되어 짐승처럼 고문을 당했고 여자들에게는 성고문을 가했다. 집행유예로 석방된 1년 후 탄광으로 되돌아갔으나 부인이 만성신부전증으로 13년간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이원갑 등과 명예회복운동을 하여 성과를 거뒀다. 대우받는 삶을 사는 게 소망이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사북노동항쟁 참여자에 대한 무자비한 고문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