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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골
사업개요
- 민주화운동 원로인사
- 2019년 '민주화운동 주요 인사' 구술 수집 사업을 통해 원로 인사 청화 스님과 문대골 목사의 생애사를 채록했다. 6월 민주항쟁의 핵심 인물이자 10.27 법난 등 불교계 민주화 과정을 생생하게 증언할 수 있는 청화 스님, 그리고 기독교계와 함석헌기념사업회 등 다방면에서 활동한 문대골 목사를 대상으로 심층 면담을 수행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문대골
- 면담자
- 권형택
- 구술일자
- 2019.6.21(1차),7.2(2차)
- 구술장소
- 함석헌기념사업회
- 구술시간
- 221분
구술컬렉션 > 재야운동 > 부문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41년생
1970 <씨알의 소리> 업무부장
1972 생명교회 개척
1982 생명교회를 기장교회로 옮기고 담임목사로 취임
2008 기독교평화연구소 창립 초대회장
2018 에큐메니안에 <문대골의 함석헌, 장준하, 그리고 박정희> 연재
NCC 교회와사회위원회 위원장 역임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회장 역임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상임의장 역임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상임의장 역임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역임
- 구술내용 요약
-
구술자인 문대골 목사는 1940년 진도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 한국전쟁 중에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아버지가 국군에게 총살당하고, 어머니도 행방이 묘연해지면서 가정이 풍비박산되는 불행을 겪었다. 그 와중에 연희전문 학생이던 큰 형님도 행방불명되었다. 이후 고아가 된 5남매가 고아원을 전전하며 불우한 시기를 보냈다. 그러다 군산애육원에서 중학교 과정을 졸업하고 17세에 해병대에 입대했다. 군 제대 후에는 단국대 야간부 청강생으로 각종 웅변대회에서 입상하기도 했다.
군대 시절 휴가 중에 서울역 대합실 신문가판대에서 신문기사를 보고 함석헌을 알게 되었고, 제대 후 함선생을 찾아가 인사를 드림으로써 인연을 맺게 되었다. 제대 후 함 선생의 소개로 강원도 안반덕농장에서 생활했고, 함 선생의 주례로 고향 처녀와 결혼도 했다. 잠시 고향에 내려가 생활하다가 다시 상경하여 함선생을 모시고 일하기 시작했다. 함선생의 영향으로 신학교에 다니고 이문동에 교회를 세우기도 했다. 그러다 함 선생이 <씨ᄋᆞᆯ의 소리>를 창간하자 함께 참여하여 업무부장으로 일했다. 그 과정에서 원고 문제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죽도록 얻어 맞기도 했다.
<씨ᄋᆞᆯ의 소리>를 나와서 한동안 감리교 이문동교회 목회에 전념했다. 그러다 함 선생의 권유로 기독교장로회 목사고시를 보고 기장 목사로 이적하여 기장 생명교회 목사가 되었다. 이후 교단 사회선교부장 시절 서울제일교회 사건에 관여했다가 깡패들에게 쇠파이프로 구타당하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목사 퇴임 후에는 전국목회자 정의평화실천협의회 상임의장,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상임의장,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상임의장 등을 역임했다. 퇴임 후 평소 소원이었던 함석헌 전기 작업에 착수해 교계신문에 글을 연재하고, 그 원고를 모아 책을 펴냈다. 이후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지금은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한때 통일단체 코리아연대 사람들을 돕기도 했고, 북한사람 김련희 망명을 돕기도 했다. ‘생은 명이다’라는 말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함석헌 선생의 씨알사상을 실천하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문대골 목사가 평생 스승으로 섬겨왔던 함석헌 선생이 펴낸 잡지 <씨알의 소리>에서 일하면서 원고 문제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난을 당한 이야기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