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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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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이호웅
면담자
신동호
구술일자
2019. 9. 4
구술장소
현대사기록연구원
구술시간
170분

구술컬렉션 > 1970년대 학생운동 > 서울대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71 - 서울문리대 학생회장

1975 - 1977 긴급조치 9호 위반 2년 복역

1979 - 1985 도서출판 형성사 대표

1984 - 1988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 의장.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상임집행위원

1986 5.3.항쟁주도로 수배 중 1987.1.12. 체포, 88.2. 노통특사 석방

1988 - 1989 인천지역민족민주운동연합 의장

전국민주민족민주운동연합 상임집행위원

1988.4. 인천민주시민학교 설립

1990 민주연합결성 통추

1992 신민주연합당 출마

1995 -  새정치국민회의 인천 남동을지구당위원장

2000 -  제16대 국회의원(인천 남동을, 새천년민주당)

국민통합신당 준비위원회 대외협력분과위원장

열린우리당 대외협력분과위원장

2004 - 제17대 국회의원(인천 남동을, 열린우리당)

2006 -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위원장

열린우리당 상임집행위원(현 최고위원)

구술내용 요약

제물포고를 나와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공릉동 교양과정부에서 학연 기반이 없는 가운데서 우연히 반 대표가 되었고, 3선개헌반대데모 때 또 우연히 선언문을 낭독하고 시위를 주도하게 되면서 운동권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2학기에 심재권의 권유로 후진국사회연구회(후사연) 창립에 함께 하게 되었고, 그런 여러 가지 요소가 얽혀 문리대 학생회장을 맡았다. 선배 운동권과 각 지역, 학맥을 망라한 전폭적인 지원 속에 1971년 교련철폐투쟁에 나설 수 있었다.

1971년 4월 8일 시위 후 동대문경찰서에 연행되어 중앙정보부로 이첩되어 조사를 받았다. 생전 처음 몸과 정신이 해체되는 수준의 가혹행위와 조사를 받고 나와 깊은 상실감에 빠져 있다가 동료들이 ‘이호웅 석방’을 요구하는 데모를 하고 있다는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용기를 얻어 학교로 돌아와 다시 시위의 지휘봉을 잡고 ‘중앙정부보 해체’를 요구하는 등 강경 투쟁에 나섰다.   

학교에서 제적되고 수배 상태가 되어 공개 활동은 많은 제약을 받았다. 도피 중에 위수령이 발동되고 더 이상 운신할 공간이 없어 채동욱의 형 채관수의 권유를 받아들여 동대문경찰서에 체포되는 절차를 밟았다. 다시 중앙정보부에서 김대중과의 연계, 서울대생내란음모사건 연루 여부를 조사받고 군대에 단독입영, 이른바 ASP로 군복무를 하게 되었다. 불 같이 뜨겁고 물 같이 순수했던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내가 결코 잘못 살았거나 불행했다거나 덜 행복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중앙정보부 조사 경험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