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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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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함상근
면담자
배병욱
구술일자
2021.9.14.
구술장소
서울시 송파구 회의실
구술시간
186분

구술컬렉션 > 1970년대 학생운동 > 고려대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68년 고려대학교 입학

1973년 ‘민우지사건’으로 구속

1989∼92년 한빛노동상담소 소장

1999∼2006년 (사)한국음악저작권협회 사무총장

2007∼2010년 한국폴리텍대학 청주캠퍼스 학장

구술내용 요약

1950년 강원도 고성군에서 출생한 구술자는 1965년 2월 강릉중학교 졸업 후 주위의 권유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검정고시를 치러 고교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68년 3월 고려대 법학과에 입학하였다. 법조인이었던 작은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사법고시를 보려했던 구술자는 2학년 때 창립된 한맥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면서 민족주의와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세계관을 정립하게 되었고, 이후 유신체제 종식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결의하게 된다. 69년 삼선개헌 반대시위와 70년 전태일 분신사건, 71년 광주대단지사건을 겪으며 구술자가 속한 한맥은 노동자와 도시빈민의 문제에 눈뜨게 되고, 특히 《한맥》 발행을 주도하였던 구술자는 학생운동이 이들과 적극 연대하여 반유신 투쟁을 벌여나가야 함을 절감한다.

1971년 교련반대시위에 적극 동참하고 있던 구술자는 10월 5일 수도경비사령부 무장군인이 고려대 안암캠퍼스에 난입하였을 때 강제연행되었다. 석방 몇 일 후인 15일 위수령 발동과 함께 무장군인이 재차 난입하자, 이미 군인들을 경험한 바 있는 구술자는 위기를 직감하고 교외로 탈출하여 그대로 도피생활에 들어갔다. 한맥이 해체되고 수배자의 신분이 된 구술자는 한맥 회원 김영곤의 자취방에 기거하면서 야학을 통해 노동자들을 교육하는 한편, 71학번 최기영을 통해 후배들에게 한맥 재건 및 반유신 투쟁 방안 등을 지도하였다. 72년 12월 이들 해체된 한맥 회원들이 유신 선포 후 최초의 반대 시위인 유신찬양 현수막 소각과 소식지 《민우》 제작·살포를 감행하였다.

1972년 3월 말 체포된 구술자는 중앙정보부에 의해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김낙중과의 연계 여부를 집중 추궁받는다. 가벼운 유신반대 의사 표명과 유인물 살포에 지나지 않았던 ‘민우지사건’은 구술자의 적극 부인에도 불구하고 김낙중과의 관계로 인해 ‘NH그룹 학원침투간첩단사건’으로 비화되었고, 구술자도 ‘고문’이라는 날조로 5년을 선고받았다.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이 적용된 탓에 ‘빨갱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구술자의 이후 삶은 큰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1980년대 말부터 노동운동에 관여하면서 한맥의 정신인 민족주의·휴머니즘에 입각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고, 유신반대의 초석을 놓았다는 높은 자긍심을 현재도 가지고 있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경찰 제포 후 중앙정보부 조사 과정과 내용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