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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만
사업개요
- 자유언론실천운동
- ‘유신 전기 민주화운동 역사정리사업’의 일환으로 수행된 이번 구술 채록은 1972년 고려대 ‘민우지 사건’, ‘민청학련 사건’, ‘자유언론실천운동’ 등 세 가지 주요 사건을 기록했다.그중 ‘자유언론실천운동’ 주제의 구술은 당시 언론계 상황과 제1차 언론자유수호선언, 유신 선포 이후의 반대 투쟁 및 노조 결성 과정을 상세히 다루었다. 특히 자유언론실천선언과 백지광고 사태, 해직 이후 투쟁위원회 결성에 이르는 일련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으며, 구술자로 박종만(동아투위)과 최병선(조선투위)의 증언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유신 독재에 맞선 언론인들의 구체적인 저항 궤적과 실천 양상을 기초 사료로 구축하고자 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박종만
- 면담자
- 배병욱
- 구술일자
- 2021.10.6.
- 구술장소
- 서울시 중구 동아투위 사무실
- 구술시간
- 303분
구술컬렉션 > 재야운동 > 부문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67 동아일보사 입사(편집국 수습기자)
1968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 졸업
1974 동아일보 노조 결성 참여, 해임(3월) 후 복직(4월)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에 참여
1975 동아일보사에서 해직,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결성에 참여
1975-1977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초대 총무
1978 동아투위 ‘보도되지 않은 민주인권일지’ 사건으로 구속(긴급조치 9호)
1979 서울고법에서 징역, 자격정지 각 1년 6월 선고받음
1979 구속집행정지로 출감
1980 ‘지식인 134인 시국선언’(1980.5) 참여 이유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연행되어 1주일 간 조사 받음
1981 아동서적을 출판하는 출판사에 해직 후 첫 취업. 이후 전문지 국장 등 역임
1987 국민일보 문화부장
1989 평화방송 보도부국장
1991-1998 전자신문 이사(출판국장)
2000 이후 언론중재위원회 전문위원, YTN 사외 이사, 신문윤리위원회 위원
- 구술내용 요약
-
구술자는 1943년 충남 당진 출생으로, 선대는 시골의 소지주였다. 부친을 일찍 여의었기 때문에 구술자의 기억에는 4남매를 홀로 키우시던 어머니가 깊이 남아있다. 외조부님은 일제 때 동아일보를 구독했던 지식인으로 짐작되고, 어머님은 외조부님으로부터 한문을 배웠다. 구술자의 투옥 기간 어머니가 보내 온 편지 내용을 보면, 구술자의 어머니의 지식인으로서의 면모와 지사적 의연함을 엿볼 수 있다.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의 영향인지 구술자는 목사가 되기를 원했고, 대학 3학년까지 이를 고민했다. 그럼에도 언론인의 길에 나선 것은 전적으로 경제적 어려움 탓이 컸다.
구술자의 성장 과정에는 정치적 문제와 대면할 계기가 잘 보이지 않는다. 고3 때 4.19를, 대학 1학년에 5.16을 경험했지만 민주주의의 절정과 강압적 분위기를 대비시켜 말하면서도 이에 동참하거나 저항한 기억을 말하지는 않는다. 대학 시절 가장 큰 반정부시위였던 6.3항쟁은 구술자가 군복무 중이었으므로 직접 겪지는 못했다. 따라서 구술자는 사회운동, 학생운동의 경험이 전혀 없고, 언론인이 되고픈 열망도 없었노라 한다. 다만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당시 배부분의 서울대 문리대 학생들은 언론사 취업을 원했기에 시험을 보았는데 공교롭게도 당시 한국 최고 위상의 언론사 동아일보에 합격하였던 것이다. 구술자는 취업 후 동아일보사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되었지만, 신동아사태 이후 경영진과 기자들의 충돌로 이러한 자부심은 무너졌고, 한국사회의 모순과 민족지 동아일보의 실상에 눈뜨게 되었다.
구술자는 1971년부터 이어진 3차례의 언론자유수호선언과 74년 자유언론실천선언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였다. 그 댓가로 젊은 나이에 해직당하여 평생을 해직기자로 살아왔고 인생길이 헝클어졌지만, 이를 후회하지 않으며 그러한 여건이 다시 조성되면 다시 참여하겠다고 하였다. 큰 사명감 없이 시작했던 언론인의 길에 이렇게 열성적으로 나설 수 있었던 동력에 대해 구술자는 부끄러움이라 말한다. ‘언론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가’
초대 동아투위 총무를 맡았던 구술자는 1977-78년 KNCC 인권위원회에서 일했고, 1978년 민주인권일지사건으로 13개월 간 투옥된다. 그러나 이 감옥생활은 구술자의 투쟁의지를 저하시킨 것이 아니라 동지들과의 유대를 통해 더욱 상승시킨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간수들이 자신들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유신체제 종말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짧은 ‘서울의 봄’에 구술자와 동아투위가 꾸었던 ‘새시대 새언론’의 꿈은 그러나 신군부의 5.17쿠데타로 처절하게 부서졌다. 구술자는 현재 동아일보사에게 큰 기대나 바람은 없다. 다만, 자신들이 저지른 역사의 죄업을 민족 앞에 엎드려 반성하라는 것이다. 그는 언론이 특정 정치적 성향을 앞세워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오직 진실의 힘을 탐구할 뿐이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동아일보 기자 대량 해직사태와 본격적인 자유언론수호투쟁의 시발점이된 '그날'의 동아일보사 분위기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