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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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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윤순녀
면담자
차성환
구술일자
2022.7.11.(1차), 7.12.(2차)
구술장소
가톨릭 전진상센터
구술시간
584분

구술컬렉션 > 재야운동 > 부문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65-1971 가톨릭노동청년회 서울교구 임원 및 전국 회장

1973 - 현재 가톨릭형제회(AFI) 활동

1973-1976 노동청에서 산업상담원으로 근무

1978-1980 AFI 국제활동으로 해외 활동 후 5·18항쟁 직후 진실 전파 활동

1984-1991 가톨릭노동사목전국협의회 총무 및 회장

1984-1988 민통련 중앙위원

1991-1995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공동대표

1993-1999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 회장

1998-현재 천주교 성폭력 상담소 평화의 샘 대표 및 이사장

2003-2010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

구술내용 요약

구술자는 1944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부모님들은 경기도 마석에서 서울로 이주했고 부친은 장사를 했지만 가난하게 생활했다. 어릴 때 6·25를 경험했는데 전쟁 직후에는 마석의 외갓집 동네로 피난을 갔다가 외삼촌들이 학살되는 사건을 겪었고 1·4후퇴 때는 경기도 안성까지 피난 갔다가 중국군들과 한 마을에서 살기도 했다. 서울로 귀환한 후 초등학교에 가니 따라갈 수가 없어서 그만두고 다음 해 입학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리더십이 있어서 선생님들의 신임을 받았고 중고등학교는 상업계 학교로 갔다. 부친이 병으로 몸져누워 생계를 책임진 모친을 도와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1963년 우연히 천주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영세를 받았다. 그리고 JOC란 조직을 알게 되어 직장을 다니면서 열심히 활동하게 되었다. 1967년 11월에 JOC의 아시아여성지도자훈련에 참여하기 위해 마닐라로 다녀오면서 많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귀국 후인 1968년 초에 JOC 상근활동가가 되었다. 그해 11월부터 71년까지 JOC전국여회장을 맡아 활동했고 이 기간 중에 강화도 심도직물사건, 버스여차장 삥땅문제, 전태일열사 분신사건 등을 경험했다. 전태일 열사 사건 후 이소선 어머니가 구술자를 찾아와 조합원 교육을 부탁해서 지원을 했다. 구술자는 1973년 천주교의 AFI(가톨릭형제회) 공동체에 참여했고 노동청에서 모집하는 산업상담사 공채에 응하여 합격했다. 이후 산업상담사로서 인천, 서울의 노동청에 소속되어 산업체를 방문하여 노동자들에게 교육하는 일을 했는데 1976년 가을에 해고되었다. 노동청은 이유를 말하지 않았지만 구술자는 면목동의 YH무역에 가서 했던 발언들이 문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구술자는 독일에서 온 장학금을 받아 강남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했고 본훼퍼를 주제로 논문을 썼다. 1978년부터  일본, 스위스, 이스라엘, 미국, 영국 등을 다니면서 AFI 공동체의 국제경험을 쌓았다. 영국에 있을 때 5·18항쟁 소식을 듣고 프랑스에서《르몽드》지 기사를 몰래 감추고 들어와 김수환 추기경에게 전달했다. 그 직후에 JOC선배인 정양숙 등이   5·18항쟁 관련하여 고문, 조사를 받는 일이 있었고, 구술자도 관련되었으나 연행되지는 않았다. 구술자는 1980년 6월부터 1984년 3월까지 부평에서 미국 메리놀수도회 소속의 신부, 수녀들과 노동사목 활동을 했다. 삼엄한 분위기에서 노동자의 부인들을 만나 성경 공부를 하기도 하면서 노동자들의 의식화를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가 블랙리스트사건이 터져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에는 함세웅 신부님을 설득하여 1984년 3월 노동사목연구소를 개설하여 전국 조직을 만들었고 이후에 가톨릭노동사목전국협의회로 개칭했다. 1985년 봄, 민통련이 결성되면서 구술자는 민통련의 중앙위원으로서 또 인접한 장소에서 일했기 때문에 민통련의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6월항쟁과 대선 이후 민통련의 문익환 목사님이 대국민 사과 단식을 할 장소가 필요하다고 해서 수도원을 주선해 준 일도 있었다. 구술자는 1989년 문익환 목사의 방북을 보면서 통일운동을 지지했고 미국에 갔을 때는 문규현 신부에게 임수경을 데리러 방북할 것을 권하기도 했다. 구술자는 1990년대 미국에서 여성 신학을 접하고 크게 자극받아 귀국 이후 가톨릭여성운동에 매진했다. 1993년 ‘새 세상을 맞는 천주교여성공동체’를 만들고 천주교성폭력상담소 ‘평화의 샘’을 창립했다. 또한 구술자는 정신대 할머니들을 지원하는 활동에 적극 참여하기도 했다. 구술자는 바티칸공의회와 에큐메니칼 정신에 입각한 가톨릭 신앙으로 평생 노동운동, 민주화운동, 여성운동에 헌신했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전두환 군사독재 초기의 삼엄한 상황 속 노동 사목의 현장
녹취문